송형곤의 심장압박

[청년의사 신문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상근직으로 일할 때의 이야기이다. 대한의사협회지가 SCIE에 탈락해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에 주무이사와 같이 참석했다.


다들 알겠지만 SCI란 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Science Citation Index)의 약자로 1958년 미국에 설립된 학술정보전문 민간기관인 톰슨사이언티픽(Thomson Scientific,구 ISI)사가 과학기술분야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수록한 데이터베이스이다.

SCIE는 SCI를 확장(Extended)한 개념으로 좀 더 범위가 넓고 Web을 기반으로 한 색인지수이다. 톰슨사이언티픽(Thomson Scientific)사는 매년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있는 과학기술저널 중 자체 기준과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등록 학술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SCI나 SCIE의 등록여부는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학술지 평가기준이 된다. 참고로 톰슨사이언티픽사는 SCI외에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예술 및 인문과학논문 인용색인(A&HCI;:Art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등도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SCI나 SCIE에 수록된 논문의 수를 기준으로 교원의 임용이나 승진을 심사한다. 그러기에 대한의사협회지가 SCIE에 등재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로 그 당시 탈락했고 그래서 대책회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코미디가 벌어졌다.

회의 참석자 중 성명삼자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한 분이 자꾸 “에스 씨 아이 투”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내가 뭔가 잘못 들은 줄 알고 그 참석자의 발언을 집중해서 들었다. 알고보니 그는 SCIE를 “에스 씨 아이 2”로 알아듣고 딴에는 조금 다르게 한다고 E(2)를 “투”라고 말한 것이었다. 옆에 나란히 앉았던 협회 주무이사와 나는 황당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뭔지 모를 절망감에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

회의 참석자 열댓명 중 대학에 있는 분은 한두 분 정도로 기억난다. 나머지 참석자는 직역을 대표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분들은 기본적으로 중앙대의원이면서 그 밖에 각종 위원회 위원과 산하단체의 임원을 겸한 분들이다. 사실 참석자들을 보고 ‘별로 영양가가 없는 회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정도로 황당할 줄은 몰랐다.

한 학생이 시험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조각상을 만든 예술가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에 답을 ‘로뎅’이라고 썼고, 그걸 커닝한 친구는 로뎅을 ‘오뎅’이라고 썼으며 마지막에 커닝한 친구는 답이 똑 같으면 선생님께 들킬까봐 ‘어묵’이라고 썼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회의는 의협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 밥에 그 나물’로 맨날 나서는 사람만 나서는 것이다. 폭넓은 참여가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진다는 의미다. 또 전문성의 결여와 최소한의 준비가 안된 지도자도 문제이다. 사실 수련받은 지 오래 됐다면 SCIE가 뭔지 모를 수 있다. 그것을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술지의 질을 논하는 자리에 SCIE를 모르는 분이 참석하게 된 구조적인 문제와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개인을 폄하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무관심과 기존 지도자들의 시대에 뒤처진 태도가 우리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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