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의 의료혁신을 위한 전략

[청년의사 신문 김형진] 컨설팅 얘기 잠깐 하자.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제안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슈가 ‘어느 병원을 어떻게 벤치마킹할 것인가’이다. 심지어는 어느 병원의 누구를 컨택할 수 있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벤치마킹 다녀온 후의 반응은 어떨까? 십중 팔구의 목소리는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이고 그 나머지 목소리는 ‘뭐, 내가 생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이다. 벤치마킹 했더니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는 평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벤치마킹 대상이 된 해외병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많은 유수 병원들은 한국으로부터 벤치마킹 문의가 오면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마치 사절단처럼 팀을 꾸려서 방문하는 게 다반사이고, 원장이라도 함께 오면 그에 맞는 예우, 즉 격을 갖춘 원장 환대와 저녁 만찬을 기대한다. 막상 벤치마킹이 성사되어 초청이 이루어지는 경우 한국병원 관계자들의 제일 관심사는 병원 투어와 사진촬영이다. 정작 필요할 것이라 여겼던 세션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끝이다. 뭐 하러 비싼 비용을 치르며 벤치마킹 오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한 마디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좋다는 이유만으로 입으려 했기 때문이다. 벤치마킹은 일을 수행할 때 치열한 고민과정을 거친 후에도 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 일이다. 설령 병원 투어를 하지 못하더라도, 단 한 시간만 주어진 미팅기회라도, 이를 통해 내가 꼭 알아야 하는 문제를 안고 가야 한다. 그렇기에 벤치마킹은 몇 시간 뚝딱 만든 질문지에 경영진의 몇 개 첨언을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시스템 분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완벽하다는 기술과 첨단 장비를 망라해서 시스템을 구축하지만 인터페이스가 깔끔해지고 산출되는 정보가 좀 더 많아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볼멘 소리가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나온다. 사람 손을 줄일 수 있다 하더니 오히려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늘어났다며 속았다고도 한다.

반면 시스템 회사는 설계와 구축과정에서 고객 병원으로부터의 무엇이든 많은 기능과 많은 정보를 담아달라는 요청에 몸살을 앓는다고 하소연한다. 빈약한 컨텐츠를 기술로 포장하여 수주한 프로젝트이기에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스스로가 어떤 정보를 어디에 쓸지 모호한 채로 혹시 언젠가는 필요할 수도 있을 것들을 우선은 밀어 넣고 보자는 병원에 있다.

차 한대를 사더라도 생활습관, 경제적 능력, 사용 목적에 따라 후보 리스트를 만든 후, 설명을 듣고, 시승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준비 없이 전시장을 방문하면 내가 원하는 차가 아닌 세일즈맨이 팔고 싶은 차를 끌고 나오거나,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며 발 품은 많이 팔았지만 정작 선택해야 하는 차는 무엇인지 정하지 못한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 와야 한다. 벤치마킹, 가려면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정보 시스템, 도입하려면 병원에게 꼭 필요한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벤치마킹 가지 말자, 정보시스템 도입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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