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현재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상 환자가 1차 의료기관인 의원을 거치지 않고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바로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규정이 그렇다는 얘기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이 의료전달체계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합법적으로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서 곧바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응급실을 경유하는 게 그 중 한 가지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가정의학과를 거치는 것이다.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고 진료의뢰서를 발급 받으면 1차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다른 과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늘면서 가정의학과가 진료의뢰서를 발급해주는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가정의학회가 자정 노력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 모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서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진료의뢰서를 발급해준 일이 공론화되자 가정의학회가 직접 나섰다. 해당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 내년도 전공의 배정을 하지 못하도록 대한병원협회에 건의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사장이 직접 사과했다. 학회가 병원에 취할 수 있는 제재가 특별히 없는 상황에서 전공의 배정 금지 건의는 이례적이고 강한 조치다.

가정의학회는 다른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진료의뢰서 발급 상황도 감시하는 것은 물론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진료의뢰를 확인하는 장치도 만들겠다고 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벌어진 일에 가정의학회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데에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1차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 갈 수 있는 예외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의학과의 위상은 하락할 게 뻔하다. “전공의들이 일차진료에서 경험해야 하는 환자들을 직접 만나 적절한 교육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빈말이 된다.

무슨 이유로든 학회 스스로 나서 자정 노력을 한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이같은 노력이 진료의뢰서 발급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정의학과에 변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