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20세기 흑사병’, ‘불치병’, ‘천형’. 이는 HIV 감염자가 처음 발생 80년 대에 에이즈를 지칭하던 말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여러 치료제가 활발하게 연구·개발 되면서 에이즈는 고혈압, 당뇨병 등과 같이 꾸준한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 됐다. 그러나 아직 에이즈는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꾸준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국내 신규 HIV 감염자의 약 73.7%는 20~40대의 젊은 환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HIV 감염자들의 바이러스 억제 기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평균 에이즈 환자의 기대 수명이 55세임을 감안해보면, 적어도 15년 이상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HIV는 치료 중간에 갑자기 중단하면 바이러스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어 한 번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복용을 시작한 환자는 평생 약물치료를 이어가야 한다. 치료를 일찍 시작하면 면역력 회복에 도움이 되나 장기간 약물 복용에 의한 부작용과 경제적 부담이 높아진다. 반대로 치료를 너무 늦게 시작하면 면역력 저하에 따른 기회감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성이 늘어난다. 따라서 HIV 치료 개시 시기 시점은 치료 손실과 이득을 꼼꼼히 비교한 후 환자 상황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NEJM 에 증상이 발현되지 않은 HIV 감염자에게 조기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 투여 시 혜택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START(the Strategic Management of Antiretroviral therapy) 논문이 발표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HIV 양성 반응을 보이며 CD4 양성 T-림프구가 1㎣당 500개 이상인 성인 무증상 감염자 4,685명을 조기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할 그룹(조기 치료군, 2,326명)과 CD4 양성 T-림프구가 350개/㎣로 감소 또는 에이즈나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요하는 기타 질환이 발현될 때까지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는 그룹(지연 치료군, 2,359명)으로 무작위 배정해 평균 3년간 추적 관찰했다. 치료에 사용된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는 테노포비르(두 그룹 모두 89%), 엠트리시타빈(각각 89%, 88%), 에파비렌즈(각각 73%, 51%)였다. 1차 평가항목은 결핵, 카포시육종, 악성림프종 등과 같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에이즈 관련 중대한 질환 및 암, 심혈관 질환 등과 같은 에이즈 비관련 중대한 질환이 나타나는 경우와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으로 정의했다. 중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기 치료군의 에이즈 증상 발현 및 사망률은 지연 치료군의 4.1%(96명)의 절반 이하인 1.8%(42명)로 보고됐다(95% CI, 0.30-0.62; P<0.001).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 안전성 모니터링 위원회는 이번 연구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판단, 지연 치료군에게도 치료를 시작할 것을 권장했다. 조기 치료군 내 심각한 AIDS 관련 증상 발생은 지연 치료군의 3분의 1보다 적었으며(RR=0.28, 95% CI, 0.15 to 0.50; P<0.001), 심각한 비AIDS 관련 증상은 지연 치료군의 3분의 2 미만으로(RR=0.61, 95% CI, 0.38 to 0.97; P=0.04) 확인됐다.

현재 국내 에이즈 치료제 급여 기준은 ▲에이즈 관련 증상이 있는 HIV 감염인 ▲CD4 양성 T-림프구가 1㎣당 350개 미만인 경우 ▲혈장 바이러스 수(Viral load)가 100,000Copies/㎖를 초과한 경우 ▲그 외 감염내과 전문의가 치료제의 투약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감염인 ▲임신 중인 감염인, 감염인 산모로부터 태어난 신생아, HIV에 노출된 의료종사자(주사침 등에 찔리는 등), 감염인의 배우자(사실혼 포함)에게 예방 목적으로 투여한 에이즈 치료제(단독 혹은 복합)로 명시되어 있다. 때문에 의료진들은 대부분 CD4 양성 T-림프구가 1㎣당 350개 미만이거나 중대한 AIDS 관련·비관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 HIV 치료를 시작한다. 무증상 HIV 감염자에게 치료를 시작할 때 얻는 이점과 위험성에 대한 무작위 연구 결과가 부족한 실정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대한에이즈학회는 ‘국내 HIV·AIDS 진단 및 치료에 관한 임상진료지침’을 통해 ‘권고 강도 및 근거 수준은 세포수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나, CD4 양성 T세포 수에 상관 없이 모든 환자에게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로 투약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HIV의 치료 패러다임이 조기 치료로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무증상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하는 것이 부작용 위험성을 넘어 전반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증명한 이번 연구는 HIV 조기 치료 전략 도입의 당위성을 높였다는 점에 있어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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