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수가 최대 30여만원 지급…이름만 소아중환자실 막으려면 기준 강화 필요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통과해 신설된 소아중환자실 수가는 의료계 의견이 반영돼 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아중환자실 수가는 간호사당 병상 수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눠 책정됐으며,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등급(간호사당 병상 수 0.61 미만)은 31만3,290원의 수가를 받게 된다.

2등급(간호사당 병상 수 0.61 이상~0.74 미만)은 27만7,140원, 3등급(0.74 이상~0.86 미만)은 24만1,000원, 4등급(0.86 이상)은 18만750원을 받는다.

종합병원의 경우에도 간호사당 병상 수를 기준으로 등급을 1~4등급으로 나눠, 1등급은 21만310원, 2등급은 18만6,040원, 3등급은 16만1,770원, 4등급은 12만1,330원을 책정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4등급, 종합병원에서 2등급을 받아 환자당 약 18만원의 수가를 받게 되고, 이 병상에 일년 내내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일년에 병상 당 약 6,500만원의 수가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 정도면 일선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소아중환자실 운영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소아중환자 학계 의견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아중환자실 간판만 걸어놓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의료기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별도 공간 확보 필수

학계에서는 소아중환자실 수가를 받기 위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의료기관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소아중환자실 수가와 관련한 세부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산하 대한소아중환자의학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소아중환자 수가 신설과 관련해 복지부에 학계 의견을 제출했는데, 여기에 세부규정에 대한 언급이 담겼다.

학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부규정은 소아중환자실만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중환자실은 물론 신생아중환자실과도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별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런 세부규정 필요성의 가장 큰 이유로는 ‘감염 위험성’을 꼽았다.

‘대부분의 소아환자는 성인에 비해 감염에 더 취약할 수 있으며, 낮은 면역력으로 인해 성인중환자에서 빈발하는 다약제 내성균주나 감염성 호흡기 바이러스 등에 의한 감염 전파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의대 소아청소년과 박준동 교수(연구회 회장)는 “중환자실에 성인환자가 입원해서 기침을 하고 있는데 그 옆에 소아중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소아중환자실을 위한 별도 공간 마련은 기본 중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별도 공간의 정의에 대해서는 출입문을 따로 두는 것이 기본이지만 출입문이 같더라도 내부에 격벽을 설치해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현재 발표한 수가 기준에 있는 ‘소아중환자실을 별도 유닛(unit)으로 구분해 운영하는 경우 소아중환자실 수가를 인정한다’는 대목에서 ‘별도 유닛으로 구분’이 별도 공간 확보 의미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히 세부규정에 넣지 않아도 당연히 별도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별도공간 확보는 현재 소아중환자실을 운영하는 국내 대형 의료기관에서도 실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위 빅5에 속하는 A병원의 경우 현재 소아중환자실을 운영 중이지만 신경계중환자실과 소아중환자실이 한 공간에 있으며, 역시 빅5에 속하는 B병원의 경우 소아중환자실 중 외과파트가 성인중환자실과 섞여 있다. 즉, A병원은 현 상태로라면 소아중환자실 수가를 받을 수 없고, B병원도 외과파트 소아중환자실은 수가를 받을 수 없다.

별도 공간 마련과 관련해 향후 일선 의료기관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인데, 소아환자의 안전을 위한 기준이기 때문에 반발의 명분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아중환자실 간호사는 전담으로

학계에서 주장하는 또 다른 주요 세부사항은 ‘소아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소아중환자실에서만 근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가가 간호인력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기 때문에 자칫 이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런 규정은 언급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학계 주장이며, 소아중환자실 업무 특성상 ‘전담’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아중환자는 성인에 비해 고 난이도 환자며 소아 진료에는 성인보다 더 많은 처치가 필요하고 이 모든 처치를 위해 진정 및 마취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절한 환자안전을 평가하기 위해 집중적인 감시와 긴 시간 동안 높은 강도의 간호관리가 필요’하며 ‘혈액채취나 혈관경로 확보, 기관 삽입 등 성인에서 단순한 과정일 수 있는 여러 검사나 처치에 있어 소아에서는 더 전문적인 기술과 세심한 주의, 많은 시간과 노력, 인력 및 장비 등이 필요하고 채취할 수 있는 혈액의 양도 아주 제한적이어서 특별한 관리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학계가 말하는 전담 간호사의 필요 이유다.

이와 관련 박준동 교수는 “소아환자에게 주사 한 대를 놓으려 해도 간호사 4명이 달라붙어야 한다. 그 정도로 성인환자 치료와는 다르다는 의미”라며 “소아중환자실에 특화된 전문간호사가 필요한 이유며, 그렇기 때문에 소아중환자실 인원은 소아중환자실에서만 근무해야 한다는 내용이 세부내용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세부내용도 실현됐을 경우 현장의 반발이 예상된다. 지금도 중소병원의 경우 간호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소아중환자실만 전담하는 간호사를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실제 소아중환자실 근무 간호사의 업무강도는 상당히 강해서, 박 교수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소아중환자실 간호사 10명 중 3명 정도는 1년 내 이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병원이 이 정도면 일반 중소병원에서는 소아중환자실 전담 간호사가 아니라 원내 간호사 중에서 소아중환자실 근무를 할 인력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의 병상은 운영해야

제대로 된 소아중환자실 운영을 위해 최소 병상 운영 기준을 넣어야 한다는 것도 학계의 주장이다. 현 기준에는 앞서 언급한 별도 운영과 간호사당 병상 수에 따른 수가등급 구분만 있을 뿐, 최소 몇 병상을 운영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이와 관련 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특별히 최소 몇 병상을 운영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고 병상이 적다고 해서 수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1~2병상을 가지고 소아중환자실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보통 유닛이라고 하면 15~30병상 정도를 말하는데, 그 정도는 안되겠지만 현실적인 병상은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병상은 5병상이다. 5병상은 서울시내 유명 대학병원이 운영 중인 소아중환자실 병상 수이기도 하다. 학계 입장에서는 이 정도도 적다.

5병상 중 2병상만 장기환자가 차지하고 있어도 소아병동에서 증상이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환자는 3명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해 최소 병상을 5병상으로 건의했다는 것이 학계 입장이다.

더해 학회는 소아중환자실 병상 중 일정비율(최소 25%)은 환자의 면역력과 전염성 질환을 고려해 격리실로 갖출 필요가 있으며, 소아중환자실에 갖추는 장비도 성인용이 아닌 소아용 장비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세부규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운영

현재 소아중환자실 수가와 관련한 세부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은, 이번 수가 개편이 3대 비급여 개선으로 인한 의료기관 손실 보상안을 기본으로 나왔다는 점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중환자실은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박준동 교수는 “소아중환자실 수가가 마련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소아중환자실 운영으로 입었던 손해를 상당부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가 신설이 아니라 그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소아중환자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세부규정들이 결코 얼토당토 않은 기준이 아니다. 이 정도는 해야 소아중환자실을 운영한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수가를 받기 위해 소아중환자실 운영에 관심을 갖는 의료기관이 있을 텐데, 이 정도는 갖춰야 소아중환자실을 운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병상만 따로 준비해서 한다고 하면 곤란하다. 그런 곳에 수가가 지급되는 것은 예산낭비며, 오히려 소아중환자에 대한 관리가 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계에서는 당장 세부규정을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복지부에서는 세부규정을 당장 마련할 생각이 없다. 수가가 새로 신설된 것이기 때문에 우선 현장에 적용한 후, 나타나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간호등급으로 등급을 나누는 등 최대한 기준을 마련하려고 했다. 세부 운영과 관련한 것은 세부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성인 중환자실도 간판만 거는 곳이 적지 않다. 세부사항은 고시에 반영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처음 시작하는 단계니까 아직 세부기준을 정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해보고 나타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도 있다. 처음부터 너무 기준을 강화하면 소아중환자실 자체가 늘어나기 힘들 것이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그것도 부담이다.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종합병원 의견도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질은 담보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관계자는 “복지부 내부적으로 이번 수가 신설을 통해 국내 소아중환자실 병상을 몇 병상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는 없다”며 “다만 현재 소아중환자실 운영과 관련한 유인책이 전혀 없었다면 이번에 유인책을 만들어 소아중환자실 운영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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