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양영구] 최근 열린 환자샤우팅카페에서 한 한의사가 침을 놓기 전에 막힌 혈을 풀어주는 수기치료라며 일곱 번이나 속옷 안에 손을 넣어 성추행했다는 여중생 민서의 사연을 들으며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가 일었다. 어떻게 이 한의사는 여중생의 믿음을 이처럼 무참하게 뭉갤 수가 있는지.

이같은 분노는 비단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사연을 접한 환자단체는 물론, 국회에서도 제2의 민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팔을 걷어 붙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진료시 신체 접촉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과 환자가 진료를 원하지 않을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환자에게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법안을 준비하며 총대를 멨다. 당연히 환자의 권리는 보호돼야 하며, ‘진료’라는 명목의 헛짓거리들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하지만 민 의원이 준비 중인 이른바 ‘진료빙자 성추행 방지법’을 보고 있자니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가 강제적(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법안을 준비 중인 민 의원과 환자단체는 극히 일부의 의사들 때문에 발생하는 병원 내 성추행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이번 진료는 신체적 접촉이 있을 수 있고 그게 싫으시면 진료를 거부하실 수 있어요”라는 말을 해야 한다. 예컨대, 다리가 부어 내원한 환자를 보게 된 정형외과의사나 소아환자의 입 안을 살펴보기 위해 볼을 만져야 하는 소아과 의사 등 모두가 진료 전 “신체를 만져야 하는데 싫으시면 진료를 거부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환자(또는 보호자)에게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듣는 환자나 보호자는 어떤 생각이 들까. 법안을 준비하는 이들의 말처럼, 이 법안이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생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까?

앞서 민서에게 몹쓸 짓을 한 한의사와 같은 의료인에 대한 엄벌은 필요하고, 재발방지도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 신뢰까지도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덧붙이면, 법이란 이름의 강제적 방법 밖에 없는지, 또 법으로 강제하면 막을 수는 있을지 의문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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