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두 교수의 Palliative Care

[청년의사 신문 장영두] 얼마전 한 수영국가대표 선수의 약물파동이 한동안 언론의 주목이 됐다. 도핑검사에서 사용된 약물은 우리도 잘아는 88서울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였던 벤존슨이 사용한 약과 동일한 종류라고 한다. 근육주사용 남성호르몬제였다. 육체적으로는 근육량의 유지, 남성적인 신체특징과 관련된 체모, 신체대사질환과 관련되어 있다.


여성이 50대를 전후해서 갑자스런 호르몬 변환와 함께 폐경기를 겪는다면 남성은 이와는 다르게 20대를 전후해서 서서히 Testosterone 호르몬이 0.5~2%씩 해마다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 남성호르몬은 특정 성호르몬 단백질과 결합된 비활성화(60%) 형태와 알부민(38%) 등과 약하게 결합되거나 또는 자유로이(Free T. 2%) 남성의 몸을 돌아다니며 남성다움의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특징을 유지하는데 조절작용을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정신적으로 남성의 기분상태를 조절하는데 관여하고, 만약 낮아지면 우울해지거나 무기력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많은 만성 염증성 질환과 당뇨환자들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경우를 접하게 되는데 이 또한 염증질환으로 인한 남성호르몬 저하가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40대 백인 남성 환자가 완치된 암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만성신경염과 통증으로 3년간 옥시콘틴이라는 서방정 형태의 옥시코돈을 재처방 받기 위해 클리닉에 내원했다.

다른 의사로부터 지난 3년간 통증치료를 받으면서 통증 자체도 상당히 잘 조절되는 편이었고, 별다른 부작용 없이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문진 중 환자는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증이 몇 달 전부터 지속됐다고 했다. 다른 특별한 약물이나 질병으로 치료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환자의 근육은 전과 비교하여 많이 양과 질적인 면에서 약화됐다고 한다. 적혈구수치나 갑상선호르몬은 정상이었다. 당뇨와 관련된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환자와 상의 후 남성호르몬의 혈중 수치를 측정했다. 정상범위의 10분에 1 수준인 매우 낮은수준의 남성호르몬양이 유지되고 있었다. 환자는 로션형태의 남성호르몬제로 치료받은 후 아주 향상된 삶을 유지하고 있다. 기분도 밝아지고, 에너지가 많아져 야외활동도 더 활발해지고 직장생활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 환자의 경우 장기간 복용한 마약성 진통제가 뇌하수체 호르몬 분비와 관련하여 장기간 방해하는 억제제 역할을 하여 결과적으로 젊은 나이에 원치 않은 심한 남성호르몬저하증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와 남성호르몬의 관계는 극히 드물게 알려져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진료실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환자에서처럼 환자가 겪는 고통은 하루하루가 천근만근 어깨에 쌓여오는 피로감 만큼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암환자에게서 불행하게도 가장 괴롭히는 증상을 꼽으라면 피로감이 가장 흔한 증상이고, 두번째가 통증과 관련된 증상들이다. 암성통증의 정도에 따라 사용되는 양의 진통제도 개인차가 크다. 그런데 이런 장기간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따른 부작용 중의 하나가 남성호르몬 저하로 인한 극심한 피로감과 근육약화, 그리고 우울감 등이다. 진통제로 인한 남성호르몬 저하 문제는 환자들과의 세심한 문진을 통한 피로의 원인을 조사하다 보면 심심치않게 발견되곤 한다. 언뜻 생각나는 진통제 자체가 주는 피로감과는 다른 차원의 피로감이다. 보통 진통제를 먹게 되면 감기약 먹었을 때처럼 조금 졸리거나 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경험을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통제로 인한 이차적인 성호르몬 저하에 따른 피로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되게 된다. 그리고 호르몬 저하에 따른 신체변화를 동반하는 게 특징이다. 암성통증을 관리하다보면 이런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환자가 말없이 힘들어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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