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중 ‘인공심폐기’ 사용 후 ‘에크모’로 교체해 중환자실 가면 삭감지난 5월 벌어진 ‘예비군 총기난사사건’ 사망자도 같은 이유로 삭감 당해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에서 중증 메르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활용돼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에크모(ECMO)가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용하면 삭감되는 의료기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심폐기를 활용해 수술을 한 상태에서 인공심폐기를 뗀 후 환자 상태를 장담할 수 없어 에크모를 달고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지만 여전히 삭감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 흉부외과 A교수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메르스 사태 후 에크모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커졌지만 에크모는 여전히 삭감당하기 쉬운 의료기기라고 밝혔다.

A교수에 따르면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수술 중 환자에게 인공심폐기를 활용하고 수술 후 환자에게 바로 에크모를 다는 행위가 하루 안에 이뤄졌을 때, 에크모 관련 수가를 삭감하고 있다.

A교수에 따르며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의료기기인 인공심폐기와 에크모를 하루에 모두 활용하는 경우 인정할 수 없다’게 심평원의 삭감이유다.

지난 5월 예비군 총기난사사건 피해자도 삭감

지난 5월에 벌어졌던 ‘예비군 총기난사사건’때에도 피해자에게 에크모를 달았지만 삭감됐다.

당시 A교수는 총상을 입고 병원을 찾은 피해자 B씨의 수술을 집도했다.

B씨는 심정지가 우려됐기 때문에 인공심폐기를 달고 폐의 상당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종료 시 폐 기능이 많이 저하돼 인공심폐기를 뗄 수 없어 에크모로 교체한 후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A교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수술 후 인공심폐기를 떼게 되면 죽을 수도 있던 위독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중환자실로 가려면 에크모를 달고 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그러나 안타깝게 환자는 그날 밤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된 예비군 총기난사사건이었고 아무 잘못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입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A교수에게 돌아온 것은 에크모 사용에 대한 삭감이었다.

A교수는 “기본적으로 이런 경우에 심평원이 에크모에 대한 삭감을 하는 것은 드물지 않다”며 “심장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어렵고 문제가 많아 인공심폐기를 떼기 어려우니 에크모를 달고 중환자실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심평원은 인공심폐기를 단 당일 에크모 처방이 나가면 삭감하고 있다. 인공심폐기와 에크모가 비슷한데 왜 같은 날 비슷한 처방을 두 번 하냐는 것이 이유”라고 말했다.

A교수는 “수술이 길어져서 다음날로 넘어가면 인공심폐기 후 에크모를 처방해도 삭감하지 않고 인정한다”며 “인공심폐기와 에크모가 같은 처방일로 나오면 기계적으로 삭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A교수는 “인공심폐기와 에크모가 사촌인 것은 맞지만 엄연히 다른 기기다. (수술실에서 인공심폐기를 달았다면 그대로 달고 중환자실로 이동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인공심폐기의 경우 사용시간이 너무 짧고 기계도 굉장히 크며 출혈이나 감염위험에 따른 합병증 위험도 크다”면서 “그래서 7~8년 전 국내에 에크모가 본격 도입된 후 인공심폐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가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심평원의 이같은 삭감 행태는 7~8년 전 국내에 에크모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료계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환자 사망하면 삭감도 여전?

A교수는 일선 흉부외과 교수들이 심평원의 이런 삭감 행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인공심폐기와 에크모를 같은날 처방했을 경우 아예 에크모와 관련해서는 청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A교수는 “다른 병원 동료 교수를 만나보면 이런 경우 삭감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교수도 많다”며 “그래서 에크모 수가 450만원(재료비 약 350만원, 행위비 약 100만원) 중 재료비만 청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한편 심평원은 A교수가 제기한 에크모 삭감과 관련해 고시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평원 심사부 관계자는 "체외순환과 관련한 행위는 회당 청구가 아니라 일일당 청구행위기 때문에, 이미 인공심폐기를 사용해 체외순환이라는 행위를 했는데 같은날 에크모를 통해 또 체외순환 행위를 한 후 청구하면 하루에 체외순환이라는 같은 행위를 2번 청구한 것이 되기 때문에 에크모 관련 행위가 삭감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인공심폐기와 에크모를 한 환자에게 같은날 사용했을 경우 고시에 따라 삭감되지만 다음날부터는 행위가 인정돼 삭감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태 때 중증 메르스 환자들은 물론 35번째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사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에크모가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용하기 어려운 장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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