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 '의사 자신이 직접 원내조제' 조항 합헌 결정에 병원계 불만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원내에서 의사가 직접 의약품을 조제하거나 육안으로 조제 과정을 지켜보며 관리·감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병원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약사법 제23조 4항의 입원환자에 대한 원내조제에서 ‘의사 자신이 직접’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약사법 제23조 1항은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으며, 약사 및 한약사는 각각 면허범위에서 의약품을 조제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제23조 4항은 ▲약국이 없는 지역 ▲입원환자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제 1군 감염병환자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한 경우 등에는 ‘의사와 치과의사가 자신이 직접’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부산 아름다운 강산병원(이하 강산병원)은 의사가 조제실에 설치된 CCTV로 조제실 직원의 의약품 조제과정을 지켜본 경우도 약사법 제23조 4항의 ‘자신이 직접’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다.

강산병원은 지난 2011년 약사 면허가 없는 조제실 직원이 의약품을 조제해 요양급여비를 청구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에 강산병원은 조제실에 CCTV를 설치해 의사가 조제실 직원의 조제과정을 지켜봤고 조제된 약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해 의사가 관리·감독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주장했지만 1, 2, 3심 모두 패소했다.

이에 강산병원은 해당 조항이 침해 최소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고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 부분을 ‘의사가 직접 조제하거나’, ‘의사가 육안으로 조제과정을 관리·감독하는 경우’라고 봤다.

헌재의 결정대로라면, 병원이 약사법에 위반되지 않고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원내조제를 하기 위해서는 약사나 의사를 3교대로 상주시켜야 한다.

의료법시행령에 따른 고용기준대로라면 상근 병원 약사 1명을 고용하면 되지만, 약사법에 맞춰 1년 내내 약사를 병원에 상주시키기 위해서는 3교대 근무를 통한 최소 3명의 약사 고용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병원들은 야간 약사에 대한 별도의 수당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만 최소 3배 가중되는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 중소병원 원장은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병원들은 매우 힘들게 됐다. 야간에 원내조제를 담당하는 약사를 뽑기도 쉽지 않아 의사가 원내 상주하면서 조제과정을 지켜봐야 하는데 업무에 지장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야간 약사 수당을 감안해 지원해주는 등의 방법이 있어야 할텐데 그에 대한 지원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도권 병원들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지방병원은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약사 3교대 근무를 위해서는 인건비만 3배로 든다. 이에 대한 수가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대한중소병원협회 홍정용 회장도 “병원들에 매우 암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대응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묘안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헌재의 결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진행한 법무법인 세승의 현두륜 변호사는 “현재 약사법에서는 원내조제는 원칙적으로 의사가 하든지 의사가 조제과정을 직접 지켜보게 하든지 하고 있다”며 “헌재에서 법리적인 판단을 했겠지만 현실하고 안 맞는 부분이 있어 합헌 결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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