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임익강 보험이사 “현 건정심 개선 없이는 어떤 제도 발전도 어려워”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14년간 의료계의 숙원사업이었던 차등수가제 폐지가 지난달 29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회(이하 건정심)에서 결국 부결됐다. 이에 의료계의 실망은 극에 달했고,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일괄 사퇴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의협 이사회에서 사퇴를 반려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차등수가제 폐지 결정 후 사퇴 선언을 하기까지, 의협 보험이사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임익강 선임보험이사는를 만나 사퇴 선언에 대한 속내와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차등수가제 폐지 무산 직후인 지난달 30일, 의협 임익강, 홍순철, 서인석 등 보험이사 3명이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번 건정심에서의 차등수가제 폐지 무산이다. 하지만 무기명 투표같은 건정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나 공익가입자 등 위원구성, 공급자 위원이 유형별로 나누어진 구조 등도 이유였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향후 의료공급자가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어떠한 주장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 명백해 사퇴를 선언했다.

- 건정심에서 공급자가 불리하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비단 이번 건정심에 국한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건정심 문제는 2004년 감사원 지적 이후에도 공급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주장돼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기명투표를 함으로써 다수결의 폭력을 보여줬다. 차등수가제 자체의 문제보다도 이번 문제를 그냥 넘어가면 향후 건정심에서 첨예한 대립이 있는 안건은 무기명투표로 해, 유형별로 나뉜 공급자의 의견을 묵살할 수 있다. 또 보험이사들은 거의 대부분 복지부, 공단, 심평원과 연관돼 있는 일들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신뢰가 없는 제도적 여건과 상황이라면 회원을 위해 보험이사들이 일을 펼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사퇴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 지난달 29일 건정심에서 무기명투표는 어떻게 진행됐나.

건정심 운영규칙을 보면 제 10조 무기명투표는 '중요한 안건으로서 위원회가 의결한 경우'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당시 회의 때에는 명확하게 '중요한 안건'으로 차등수가제 폐지가 들어가 있는지도, 무기명 투표에 대한 위원회의 의결과정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의협에만 해당하는 차등폐지'에 대해 무기명투표를 올린다는 것은 특정 공급자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에 대해 다수결의 폭력이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건정심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 당시 회의석상에서 이러한 이의제기를 하진 않았나.

의협은 무기명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등수가제 폐지를 주장해야하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당시 위원장이었던 복지부 차관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담당 과장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기명투표로 진행됐다. 당시 의협 입장에서는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면 오히려 가입자나 공익 등에게 또다른 미움을 살까봐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 일각에서는 보험이사들의 일괄 사표가 추무진 회장에 대한 불만을 표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건정심 직후부터 보험이사들이 이런 문제를 고민했고, 다음날 회장에게 문제제기와 건정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는 보험이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고 사퇴에 대해서도 죄송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오해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사직에 대한 의미가 임명권자에 대한 반발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사직의사를 표하고 난 뒤 이사진 내부에서도 너무 성급한 행동이 아니었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일부 오해하거나 걱정하신 회원이 있으시다면 이번을 계기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30일 상임이사회에서 사표를 반려하기로 해 결국 사표가 철회됐다. 다시 보험이사 업무를 맡게 될 텐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나갈 계획인가.

추무진 회장이 사표를 반려하면서 '차등수가제 폐지가 무산된 것이 비단 보험이사들만의 책임은 아니고 이 상황에서 일괄 사표를 낸다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이번 일을 계기로 향후 정책 추진에 있어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자세로 더욱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의·병 공동성명서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정심 구조개편을 위한 TF 등과 함께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 개선을 위해 또다시 보험이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도 강조했는데 개인적으로 부담스럽고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메르스로 미뤄둔 과제 역시 해결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 만큼 보험이사들이 모두 그만두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못다 이룬 차등수가제 폐지가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며, 건정심 구조개편 등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등 회원들을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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