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윤의 리씽킹 이노베이션

[청년의사 신문 배성윤] 혁신이 의료계 화두가 되면서부터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경영진은 경영혁신이니 환자경험증진이니 해서 저마다 혁신을 위한 온갖 방법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때로는 설익은 아이디어를 현장에 적용하다 의료진의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고, 구호만 부르짖다 상처만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성공하는 조직들이 있는 걸 보면 뭔가 혁신에 성공하는 방정식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영어사전에서 혁신(innovation)의 뜻을 찾아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하는 행위’라고 나와 있다.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의성’과 함께 그것을 현실에 도입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혁신의 방정식에는 창의성과 위험감수 모두가 필수요건이다.

그런데 의료계 현실은 어떤가? 개원 초창기에 온갖 창의적 아이디어와 실천을 강조하던 것과는 달리, 병원이 성장을 거듭할수록 겉으로는 혁신을 부르짖고 창의성을 북돋워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의료진과 직원들이 정해진 규정과 지침에 따라 행동하기를 강요한다. 사실 외부의 규제 탓도 크지만, 이러한 행태는 병원의 효율적 운영, 원활한 역할 조정, 시스템 통제 등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에 따른 것이다. 혁신성의 저하는 이렇듯 시스템의 안정성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따른 부작용이다.

혁신성을 높이려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장려해야 한다. 창의성은 전문지식, 상상력과 유연한 사고능력, 동기부여 등 세 가지 요소에 달려있다. 많은 병원들이 앞의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 방법들은 비용도 많이 늘고 효과도 늦게 나타난다. 세계적인 병원의 공통점은 직원들이 일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 만족, 일 자체에 도전하려는 자세와 같은 내재적 동기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만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잠재적 편익을 실현하기 위해 잠재적 손실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우리나라 병원들은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환자의 위험을 무릅쓴 것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이 남긴 명언 중에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메르스 위기로 우리나라 의료계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힘쓰고 의료계는 환자를 위한 진정성 있는 혁신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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