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청년의사 신문 박재영] 영어로 옮기기 가장 어려운 우리말 중의 하나가 ‘공공의료’이지 싶다. 이걸 ‘public health’라고 옮길 수는 없다. 그건 ‘공중보건’이라는 훨씬 큰 개념이니까. 공공병원은 ‘public hospital’이라고 하면 되지만, ‘의료의 공공성’도 참 번역하기 어렵다. 뭐라고 옮길 것인가? 직역해서 ‘public character of healthcare’라고 하면 대충 뜻은 통하지만, 현실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 매우 어색하다. ‘의료의 공공성 제고’라는 말을 쓸라치면 더욱 난감해진다.


외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대화를 할 때도, 이를 설명하는 게 정말 어렵다. 공공의료 혹은 공공병원의 비중이 낮다는 이야기를 하면 흔히 이런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거의 똑같은 패턴이다. “한국에는 공적 건강보험제도가 없나요?” “아니요,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에 모든 국민이 가입되어 있어요.” “그럼 국가 보험에만 가입된 사람들은 공공병원에서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아니요, 모든 의료기관에서 똑같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죠?” “어버버~.”

메르스 사태로 우리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2000년의 의료대란 이후 처음인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흔히 등장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공공의료’와 ‘공공병원’이다. 공공병원이 부족해서 메르스가 확산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이참에 공공병원을 획기적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공공병원이 부족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것도 맞고, 의료의 공공성을 제고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말은 바로 하자. 공공병원이 부족한 것이 그 자체로 문제인 건 아니지 않나. 적어도 좁은 의미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차이는 없다. 가격은 똑같고 수준은 오히려 민간이 높다. 민간병원의 비중이 높은 것은 국가가 병원을 짓지 않으니 민간이 자본을 축적하여 병원을 지었기 때문이고, 민간병원에 대해서도 국가가 강력히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있으니 국가로서도 굳이 적극적으로 공공병원을 더 만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공공병원의 비중을 늘릴 필요는 있는가?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이미 병상의 과잉 공급이 문제인 나라에서, 500병상짜리 공공병원 100개를 더 지어서 5만 병상을 늘리면 뭐가 좋아지는가? (그래봐야 공공병원의 병상 비중은 10%p도 채 높아지지 않는다.)

문제는 공공병원의 수가 아니다. 국가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해야 할 더 중요한 공적인 업무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다. 메르스 사태에서 여과 없이 다 드러나지 않았나. 방역 체계는 부실했고, 컨트롤 타워가 없어 허둥대기만 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얼마나 허술한 조직이었는지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복지부와 지자체와 보건소의 연결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대표적인 공공병원이라 할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존재감조차 없었다.

메르스가 진정되고 나면 한국의료 개혁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필시 새로운 정부 기구를 만드는 방안이 나올 것이고, 국가재난병원의 설립 등 공공병원을 더 짓는 방안이 나올 것이다. 병원의 감염관리나 응급실 시스템이 허술하다며 각종 규제들을 강화하면서 비용은 민간병원들이 알아서 마련하라고 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방식으론 안 될 것이다. 제2의 메르스 사태가 터지거나 다른 종류의 보건의료 위기가 찾아왔을 때, 비슷한 혼란이 반복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의료에 관한 관점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구조에서는 민간병원이든 공공병원이든 다 공공성을 띤다. ‘공공의료’라는 뜻의 영어 표현이 마땅치 않은 것은 그냥 ‘의료’라는 말에 ‘공공’이라는 의미가 원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병원들이 더 공공적이지 못한 것은 의료제도의 왜곡 때문이며, 의료의 공공성이 낮은 것은 ‘병원들’이 아니라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이나 12인실이 그 모양이었던 것이 정말 병원들의 탐욕 때문이었나? 민간병원들을 ‘무개념 의료업자’들로 취급하면서 허구한 날 공공병원 부족하다는 공염불만 늘어놓아서는 답이 없다. 공공병원 비율 이야기 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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