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집담회서 훈련 부족·문제 정치화·권한 외 결정에 대한 질책 등 지적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재난상황 시 현장 공무원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확산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공무원이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공무원사회의 경직된 문화 때문이라는 의견이 더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공동단장이었던 서울의대 이종구 교수는 지난 30일 서울대보건대학원이 ‘한국의 메르스 사태와 공중보건’을 주제로 개최한 집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벌어지는 현상과 우리의 지식이 달랐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와 관련해 현장 공무원의 훈련이 중요하다”며 “관료주의 사회에서 잘 모르는 일이 벌어졌을 때 현장에서 대처하는 판단기준이 어떻느냐에 따라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문제를 쉽게 처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한 후 (보건당국) 회의에 가서 역학적 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 자리에서 첫 환자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했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했다. 환자 상태가 나빠 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환자 추적이 안됐던 것 같다. 답답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교수는 공무원들이 잘 모르는 사태를 맞았을 때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공무원들이 왜 빠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느냐와 관련해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며 “(질병관리본부장 시절) 인플루엔자 문제를 해결할 때, 갑자기 사망한 환자가 있었다. 이 때 질본업무 외 조사를 좀 했더니, 네 일도 아닌데 왜 건드렸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빠른 판단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때 이에 대한 평가보다는 권한을 벗어났을 때 질책하는 문화기 때문에 공무원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공중보건문제가 정치화됐을 때 어려움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인플루엔자나 광우병 등은 다 정치 쟁점화됐다. 이런 상황이 되면 공무원들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욕까지 듣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공무원이 이야기할 수 있는 한계가 생기게 된다. 공중보건문제의 정치화가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의 부실함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첫 환자 발생 후 ‘중동’을 통한 전파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더 넓은 부분을 보지 못했다”며 “내부 가이드라인을 빨리 바꿨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또한 메르스가 지역사회감염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단계를 주의에서 위로 올리지 못했다. 이 지침이 결과적으로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우리 보건의료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국내 의료기관 중 음압병상 자발적으로 만든 곳이 없다. (메르스처럼 감염병환자가 오면) 환자들이 다 도망가고, 그 피해를 의료기관이 뒤집어 쓰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이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집담회에서 ‘공중+보건+정책의 연결과 단절’을 주제로 발표한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보건당국이 이번 메르스 사태를 너무 병원감염 중심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병원감염은 병원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감염으로 봐야 한다”며 “병원감염과 지역감염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했지만 메인 소스는 지역사회 감염으로 봐야 하며, 이렇게 봐야 큰 그림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위험 소통과 거버넌스’를 주제로 발표한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초동대처에 실패한 정부가 국민과 빠르게 소통하지 못한 것이 위기를 증폭시켰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메르스 위험은 결정적으로 정부의 위험소통 실패에 의해 증폭됐다. 위기대응 소통의 키워드는 공개다. 뭘 이야기하는지 분명해야 하고 시기적절해야 한다. 이 원칙에서 작은 실수들이 쌓였고 신뢰가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초동대처가 늦은 후 최고수장이 나서 ‘여기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큰 효과를 낼 수 있는데, (메르스 사태에서 최고수장이 나선 것은) 2주가 지나서였다”며 “의아하고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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