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다 감염 위험에 노출돼 보름 동안 자가 격리됐던 한 간호사가 쓴 편지를 받아 본지에 게재한 적 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근무하는 자신으로 인해 자녀들이 등교 금지 조치를 받은 것을 보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는 내용이 주였다. 그 간호사는 “아이들에 대한 학교 방침에 눈물만 나오고 가슴이 아리기만 했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해당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편지로 인해 간호사의 자녀들이 학교 측으로부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해당 글을 내려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늦은 시각에 전화가 온 것을 보면 상황이 좋지 않은 듯했다. 해당 학교에서 그 글을 문제 삼으며 자녀들에게 한 소리 했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말에 내부 논의 끝에 게재했던 편지는 삭제했다.

메르스와 사투 중인 의료인들에게 이런 일은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편하게 병원에 다닐 수 있도록 터놓은 출입문을 봉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에서 받기로 했던 수술 일정이 취소되는 일도 있다. 행여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돼 집을 가지 않은 의료인도 있다.

메르스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현장을 취재하는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가리고 순식간에 흩어지는 의료진의 모습도 봤다.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듯한, 정말 웃지 못 할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메르스보다 사회의 시선이 더 무서워 보인다. 한 의사는 “조국을 위해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돌아왔는데 사람을 죽였다며 손가락질 당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신종플루 때도 있었다. 당시에도 사회적 논란이 됐지만 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고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다시 재연됐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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