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한국의료가 실제론 대단히 허술한 건물이었다는 사실이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드러날 것을 누가 예상했을까.

메르스 사태는 한국의료의 구조적 모순들을 낱낱이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이다. 먼 훗날 한국의료의 역사는 메르스 이전과 메르스 이후로 나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구분이 가능할 정도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메르스의 확산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병원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다인실 위주의 병실, 부족한 간호 서비스로 인해 보호자나 간병인이 환자 곁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 의료전달체계의 부재로 인한 환자들의 의료 쇼핑, 병실은 물론 응급실 환자에 대한 병문안까지 당연시하는 문화,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과 그로 인한 응급실 과밀 현상, 감염병 대량 발생과 같은 보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콘트롤 타워 부재 등 독특한 한국적 상황들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확산의 원인과 별개로,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의료의 문제점들은 더 많다. 우선 취약한 공공의료 기반으로 인해 대량 재난이나 감염병 창궐과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감염자의 수용이나 치료에 허점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질병관리본부의 기능이 얼마나 취약한지, 감염내과 및 역학 전문가는 또 얼마나 부족한지 등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보건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도 새삼 드러났다. ‘공중보건’ 영역이 정부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의 과제라는 점도 일깨워줬다.

아직은 다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한 상황이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곧바로 이런 문제들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며 마치 농담처럼 ‘이번엔 질병관리본부를 해체할 건가’라고 묻고 있지만, 실제로는 질병관리본부 해체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포괄적 차원의 개선책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정부 기관들만 생각해도 질병관리본부, 식약처, 국립보건원, 진흥원 등의 기구를 전면 재편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이들 기구를 미국의 CDC, FDA, NIH 등과 비교해 보면 예산, 인력, 전문성, 역할 분담 등 모든 면에서 비교가 부끄러울 정도로 미흡하다. 보건부 독립이나 복지부 복수차관제 도입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보건행정조직을 갖추는 일이다.

다인실, 간병, 전달체계 등의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고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지만, 오히려 그처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메르스 사태를 반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상처와 과제를 남기겠지만, 역설적으로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걸친 대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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