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이송 요원, 집계 과정에서 엑셀 누락…의사, 펠로우라 응급실 진료기록 안남아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삼성서울병원이 개원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메르스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환자를 국내 최초로 진단했던 병원이며 국내 최고 수준의 관리 시스템을 자랑하던 삼성서울병원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불운과 과오가 겹치고 겹쳤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불운과 어떤 과오가 있었는지 살펴본다.


14번환자 메르스 접촉 늦게 알아

삼성서울병원은 5월 20일에 1번 환자를 확진 판정했다. 하영은 교수를 비롯한 감염내과 팀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확진이 늦어졌더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1번 환자 확진 이후 삼성서울병원의 대처도 잘 이루어졌다.

하지만 5월 27일,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14번 환자는 애초에 세균성 폐렴으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고, 그 기간에 1번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 메르스에 감염됐다.

원래의 폐렴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을 했다가 발열이 계속되어 평택굿모닝병원으로 가서 다시 입원을 했고, 항생제 치료에도 증상이 악화되자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았다.

14번 환자는 체중이 10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건장한 35세 남자다.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상태가 위중하지는 않았지만, 기침을 아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흉부 엑스레이 결과는 세균성 폐렴에 합당했다. CT 결과도 세균성 폐렴으로 보였다. 의료진은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가 발병했음을 몰랐으므로, 메르스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세균성 폐렴과 바이러스성 폐렴은 엑스레이나 CT 소견이 다르지만, 메르스 폐렴은 바이러스성 폐렴임에도 불구하고 세균성 폐렴과 비슷한 소견을 보인다는 점도 진단 지연에 한몫을 했다.

5월 29일 저녁, 질병관리본부는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삼성서울병원에 통보한다. 검사 결과는 양성. 당연히 삼성서울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3일간 메르스 환자가 응급실에 머물면서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밤 9시 긴급회의가 소집됐고, 접촉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의료진과 직원들(약 800명)을 격리하고 응급실을 소독하는 한편 27~29일 사이에 응급실에 머물렀던 환자, 보호자 등에 대한 추적을 시작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원들 사이에는 “너무 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35번 의사환자, 임상강사라 응급실 진료 기록 누락

하지만 문제의 35번 환자는 이 과정에서 ‘누락’됐다. 그의 신분이 펠로우(임상강사)라는 점이 작용했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특성상, 펠로우가 응급실에서 행한 진료 행위는 전자의무기록에 잘 남지 않는다.

교수, 레지던트, 인턴, 간호사 등의 활동 내역은 모두 기록되지만, 펠로우의 행위는 교수의 업무를 대신 처리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14번 환자와 접촉했던 의료진 중에 펠로우만 전자의무기록에 이름이 없었고, 아무도 그 부분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불운과 과오가 여기서 한꺼번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35번 환자는 자신의 노출 사실을 모른 채 진료와 일상생활을 계속했고, 일요일인 31일에 증상을 느껴 스스로 병원 측에 연락을 취한 끝에 메르스 진단을 받고 국가격리병상이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이면서 5월 27일에 응급실에 머물렀던 35번 환자가 자신의 감염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14번 환자와 접촉하지도 않았고 병원 측의 격리 대상자에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말과 월말이 겹치면서 인수인계 등 여러 가지 업무들이 겹친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격리되었어야 하는 35번 환자가 이런 이유로 격리 대상에서 제외된 채 시민 1,500여 명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하는 일까지 생기는 바람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긴급 브리핑을 여는 일이 생겼고, 한때 35번 환자와 박원순 시장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로 붐비는 우리나라 대형병원 응급실의 특성상 3일 동안 14번 환자와 접촉한 사람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 부분은 삼성서울병원과 질병관리본부가 약간의 갈등을 빚는 부분이다. 병원 측은 환자 명단을 질본에 넘겼으니 면회 온 가족까지 챙기는 것은 질본 책임이 아니냐는 입장이고, 질본 측은 면회객 명단까지 병원 측이 확보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137번 응급실 이송 요원 환자, 엑셀파일 취합서 실수한 듯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삼성서울병원의 환자이송요원인 137번 환자를 놓친 데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29일 밤 긴급회의에서 의료진 외에 이송요원 7명, 미화원 6명, 병동 보조요원 17명도 파악하여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37번 환자가 다시 누락된 것이다. (누락 이유는 엑셀 파일들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37번 환자는 2일부터 경미한 발열 증상이 있었지만 역시 자신의 메르스 감염을 의심하지 않았다. 동료 이송요원들이 격리된 가운데 자신은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환자와의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이후 137번 환자는 9일간(오프가 있어서 실제 근무 일수는 5일) 근무를 지속하다가 12일에야 진단을 받았다. 증상이 점점 심해진 137번 환자가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검사를 받아본 이후였다.

137번 환자를 놓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과오다. 30여 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격리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이 누락됐는데 하필 그 사람이 감염된 것을 두고 ‘불운’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병원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이송요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책임이 경감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이송요원이 근무시간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 감염 우려가 적고, 아직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137번 환자는 기침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은 이로 인해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 137번 환자의 발생 전후로 삼성서울병원 측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11일까지만 해도 “삼성이 뚫린 게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는 언급까지 나올 정도로 당당(?)한 모습을 보였지만, 12일 이후 완벽하게 ‘사죄’ 모드로 들어가며 병원의 부분폐쇄 결정까지 내렸다. 개원 이후 최초의 일이자 최대의 위기 상황이다. ‘최고’를 지향하는 삼성의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었다.

내부적으로 완전 폐쇄도 고민

병원 측은 내부적으로 완전폐쇄도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완전폐쇄를 하기에는 중증 입원 환자가 너무 많았다. 6월 16일 현재 삼성서울병원에는 약 700명의 입원 환자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2,000병상 중 1,300병상이 빈 것이다. 병원에 남은 환자들은 중환자실 환자, 장기이식 환자, 소아암 환자, 암 수술 직후인 환자 등으로, 이들을 모두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혼란의 3주를 거친 현재, 병원 내부 분위기는 어떨까. 한마디로 ‘침통’하다. 한 관계자는 “병원 이미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라면서, “불운했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6월 1일부로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새 이사장에 취임했다는 점,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가 여전히 위중한 상태라는 점, 이번 사태가 ‘삼성’이라는 모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의 변수들이 남아 있는 가운데, 이번 위기를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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