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격전지를 가다①-대전 대청병원…40여명 직원들이 137명 환자 24시간 돌봐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문을 연 지 4개월도 안된 ‘신생 병원’인 대청병원(대전 서구)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과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응급환자인 줄만 알았던 환자(16번)가 뒤늦게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병원은 한 순간에 마비됐다. 대청병원은 확진 통보를 받은 날(5월 31일 오후) 즉각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지난 1일부터 사실상 병원 전체를 ‘코호트 격리’했다. 물론 응급실은 폐쇄했으며 외래진료도 보지 않고 있다. 병원 출입문에 환자 면회 등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고 병원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체온을 체크하고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코호트 격리된 지 일주일이 지난 7일 찾은 대청병원은 일요일인데도 의료진과 직원들이 평일처럼 나와 있었다. 병원에 격리돼 있는 환자와 간병인 등 137명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환자와 간병인들도 오수정 병원장이 직접 만나 메르스 잠복기(14일) 동안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 한명이 집으로 가겠다며 탈출해 경찰이 다시 병원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대청병원은 1층에 메르스 상황실을 마련해 놓고 매일 환자와 간병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날도 격리도 있는 환자와 간병인들 중 몇 명이 메스르 의심 증상을 보여 검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결국 4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이들 중 한명은 사망했다. 오는 13일까지였던 격리 기간은 14일 더 연장됐다.

“우리가 포기하면 환자들은 어디로 가나”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대청병원 의료진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미 16번 환자와 접촉했던 의사 8명과 간호사 등 직원 43명이 자택 격리된 상태여서 절반으로 감소한 의료진이 137명을 진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메르스 감염 위험 때문에 방호복을 입고 진료해야 하기에 체력 소모는 더 크다.


그래도 의료진은 “여기서 뚫리면 대전 시민 전체가 위험하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수간호사가 솔선수범해서 격리돼 있는 병동에 들어가고 젊은 의사들도 “우리는 젊으니까 감염된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다”며 자진해서 진료를 하고 있다.

김응수 건강검진센터장은 “16번 환자가 확진은 우리 병원을 나가서 받았지만 어찌됐든 오래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병원이 뚫리면 지역 사회가 초토화될 수도 있다”며 “의료진 모두 저지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 진심이 통했는지 환자들도 협조를 잘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간호사들은 2교대 근무를 하면서까지 24시간 병동을 지키고 있다. 보건 당국 지시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젊으니까 메르스 감염돼도 금방 나을 거라면서 환자 드레싱을 하러 들어가는 후배 의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병원 관계자는 “대청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메르스 의심 증상이 없어도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이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상태로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진의 체력을 떨어져 가는데 격리 기간은 길어지면서 무엇보다 의료 인력 지원이 절실하다. 대전시에서 간호사 10여명을 파견했지만 장기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오수정 원장은 “우리가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하루하루가 힘들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가장 절실한 부분이 의료 인력이다. 간호사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메르스 병원이라는 낙인 찍혔다”


메르스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의료진은 주위 시선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대청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나 유치원에서 대청병원에 근무하는 부모를 둔 자녀는 나오지 말아 달라는 요청까지 받고 있다. 아예 자녀를 다른 지역에 있는 시댁이나 친정에 맡겨 놓고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의료진도 있다.

대청병원 관계자는 “학교에서 부모가 대청병원이나 건양대병원에 근무하는 아이들은 손을 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할 말을 잃었다”며 “메르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진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복이나 침대 시트 등 세탁해 주던 업체가 대청병원 세탁물은 받지 못하겠다고 거부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서 대청병원 세탁물도 함께 처리하면 거래를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대청병원 한 직원은 “이미 낙인이 찍혔다. 전자팔찌를 차고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오수정 병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명감을 갖고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인과 직원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개원한 지 4개월도 되지 않아 메르스로 인해 병원이 마비된 대청병원은 이번 사태가 끝난다고 해도 환자들의 발걸음이 이미 끊긴 상황에서 병원이 회복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메르스 전투 진두지휘하고 있는 오수정 대청병원장

“무엇보다 인력 지원 절실…비난보다 격려가 필요한 때”

대청병원 오수정 원장은 응급실을 통해 들어와 일주일 가량 입원했던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된 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병동 폐쇄’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오 원장은 “우리 병원에서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병원인데 사실상 병원 전체가 격리됐다.

대청병원이 진료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았고, 개원식을 한 지 열흘만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시기였지만 그것보다도 메르스 감염 확산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염관리에 문제가 생겨 지역사회로 균이 퍼지면 그야말로 국가적인 대란이 생기는 것이다.

대전에서 메르스 감염환자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한 5월 31일부터 비상 상황임을 인지하고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했다. 우선 메르스 확진환자와 직접 접촉한 의사와 간호사, 직원 43명을 자가 격리했다. 환자가 발생한 병동을 포함해 타 병동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 등 137명에 대해서도 메르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격리 조치를 시행했다. 응급실은 즉시 폐쇄했고 외래 진료도 꼭 필요한 일부 과를 제외하고 중단된 상태다.

- 환자와 보호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격리 결정이 내려지고 일부 환자는 이 결정에 반발해 집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과 경찰이 집을 방문해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 병원으로 다시 모셔 왔다. 제가 직접 의료진과 함께 입원환자들을 찾아 “우리가 여기서 무너지면 대전 시민 전체가 메르스에 노출될 수 있다. 우리가 최후의 보루다. 격리를 무사히 마쳐 우리가 살면, 대전시민도 산다”고 호소했다. 다행히 모든 환자들이 잘 협조해주고 있다.

- 대학병원에 비해 의료 인력 등이 부족한 중소병원으로서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움 점은 인력 부족이다. 대전 지역에서 처음으로 메르스 확진을 받은 환자가 병원에 일주일가량 입원했기에 51병동에서 근무하는 모든 간호 인력이 자가격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직원은 51병동 지원을 기피하는 일도 생겨 수간호사를 중심으로 간호사들이 2교대를 하며 환자를 케어하고 있다. 일부이지만 메르스를 이유로 퇴사하는 직원까지 있어 간호사들은 업무 공백을 메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동에서 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간호사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 방역이나 소독에 필요한 N95 마스크나 방호복, 고글, 장갑 등은 대전시, 질병관리본부의 지원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다. 또 병실에 있는 환자와 간병인, 보호자들을 위한 간식, 과일 등의 구호물품도 속속 도착하고 있어 별다른 물자 부족은 없다.

- 일선 현장에서 이번 메르스 사태를 지켜봤을 때 정부 방역체계나 대응은 어땠나.

정부의 방역 시스템에 혼선이 있었으나 질병관리본부, 지자체와 협의해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고 있다. 감염병에 대처하는 국민 의식 향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메르스 사태로 인해 병원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기고 있다.

이는 정부와 언론에서 메르스 감염에 대한 공포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대부분의 병원이 격리를 통해 외부 감염을 철저하게 막고 있는 만큼 걱정하지 말고 평상시와 같이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좋다.

- 마지막으로 국민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역사회로의 감염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과도한 공포는 갖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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