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연구회서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 '뜨거운 감자'… "신뢰관계 회복이 먼저"

[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시행 1년여를 앞둔 환자안전법이 의료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자안전법은 지난해 12월 말 국회를 통과해 내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하위법령 마련 등 준비가 미흡해 1년 후 제도 시행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환자안전연구회가 지난 27일 국회도서관에서 ‘환자안전법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2015년 춘계학술대회’에서는 4년 만에 제정된 환자안전법이 의료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28일 환자안전법 제정 이후 의료계 전문가들과 함께 ▲환자안전 실태조사 방안 ▲보고·학습시스템의 설치 및 운영방안 ▲환자안전기준 및 환자안전지표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제 막 논의의 첫 발을 뗀 상황이다.

한국의료질향상학회 이상일 부회장(울산의대)은 “환자안전법 갈 길이 멀다. 집을 지어야 하는데 벽돌만 잔뜩 있고 설계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설계도를 만들어야 벽돌을 어디에 쓰고, 기둥 크기는 얼마나 돼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환자안전 실태조사나 보고·학습시스템 기준, 환자안전기준과 지표 등은 각각의 목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며 “큰 그림과 목적에 대한 것들이 명확하게 명시돼야 세부 그림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 시 해당 의사나 의료기관에 대한 비밀을 보장해 주기로 명문화 했지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와 의료기관 간 신뢰 형성이 먼저고 그래야만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 시스템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안전법 제17조에 따르면 복지부장관은 자율보고 한 보고자의 의사에 반해 보고자의 정보를 공개할 수 없으며, 수집된 자료는 검증 후 개인 식별이 가능한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또 보건의료기관장은 해당 보건의료기관에 속한 자율보고를 한 보고자에게 그 보고를 이유로 해고, 전보, 그 밖에 신분이나 처우에 관련해 불리한 조치를 할 수 없도록 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정책개발실 구홍모 팀장은 “환자안전사고를 자율보고 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며 “보고를 하게 되면 처벌 받을 것 같고 괜히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환자안전법에) 비밀유지조항이 있고 개인정보를 삭제하게끔 돼 있지만 지금껏 개인정보를 처리해 준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 팀장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의료인과 환자, 의료기관과 신뢰가 쌓이면 물 밑에 가라앉아 있는 환자안전사고들이 왜곡 없이 보고돼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라며 “먼저 신뢰관계를 쌓고 환자안전사고 내용을 수집하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인하대병원 김우철 적정진료지원실장은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하면 인증원 등과 데이터를 공유하게 돼 있는데 인증원에 사고 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인증 받는데 문제가 생긴다. 병원 QI팀에서도 아주 기겁을 한다”면서 “그런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비밀이 유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환자안전사고 익명으로 제출하게 돼 있지만 안 내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환자안전사고에 대한 현황 파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경우 환자안전 실태조사 또한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주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허윤정 교수는 “환자안전사고나 환자안전활동에 대한 기본적인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기준 설정이 어려워 환자안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더라도 논란이 생길 여지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환자안전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이 미흡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환자안전연구회 박병주 회장도 “1년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준비될 것 같지 않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되려면 우선 정부와 의료기관 사이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환잔안전사고) 보고된 정보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단계적으로 연차별로 추진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의료기관이나 의사들이 환자안전사고 발생에 대해 자율보고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김대욱 사무관은 “내부적으로 하위법령 부분 지속적으로 논의해 초안을 그려나가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국가 R&D 연구비로 10억원을 지원 받기도 했다. 이는 정부가 지원하는 환자안전 관련된 첫 예산”이라며 “올 10월 예산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환자안전법 제정됐지만 가장 큰 맹점이라고 한다면 자율보고다. 보고를 안 할 거라는 것 기본적으로 갈려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중소병원들의 참여가 극히 적어 더 우려하는 것 같다. 의료기관, 의료인들이 자율적으로 보고해 재발방지 발생하지 않도록 환자안전 위한 부분들에 대해 의견 청취하며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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