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 원장

[청년의사 신문 조승연] 스승의 날이 지났다. 소위 ‘사’자 붙은 직업 중 의사(醫師)는 교사(敎師)와 같이 스승’사’자를 써 판검사(判檢事)나 변호사(辯護士)에 쓰이는 일 또는 벼슬 ‘사’나 선비 ‘사’와 다름을 알고 신기해 한 적이 있었다. 법조인들은 판관의 역할을 하거나 의뢰인이 재판에 이기도록 돕는 일을 한다. 어느 한편은 이기고 다른 편은 진다. 그러나 의사나 교사는 함께 하는 당사자 모두 윈-윈하는 일을 한다. 병을 고친 환자는 물론 그 가족, 친구, 그를 치료한 의료진까지 모두가 행복해 한다. 더구나 사람됨이 지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의업이다. 이런 뜻에서 의사를 스승처럼 불러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필자는 간혹 지인들로부터 왜 안정된 의과대학 교수나 돈 잘 버는 개업의의 화려한 길을 두고 어려운 공공병원 의사를 택했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아마 공공병원 의사는 뭔가 일반적 의사와 다른 고난의 길을 걷는 사명감에 찬 모습이거나 무슨 사연이 있는 존재로 비추어지나 보다. 더구나 공공병원이 불과 전체의 5%에 불과해 보통 사람들은 한 번 이용해 볼 기회조차 적은 우리나라니까 말이다.

이제 개업이 쉽고 소수 전문가로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며 고소득을 올리던 의사, 변호사들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취업자리조차 걱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의료원 등 지역거점 공공병원에는 의사 구하기가 여전히 어렵고 그나마도 좋은 의사들이 계속 떠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당수 공공병원은 낮은 급여수준에도 많은 부채와 누적적자, 반복적인 유동성 악화로 존립자체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어렵다. 병원의 질적 수준과 수익성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역량에 많은 부분 의존한다. 바꾸어 말하면 공공병원의 수익이 적고 의료수준이 충분치 못한 이유는 실력과 사명감을 갖춘 훌륭한 의사를 공공병원에 제때 공급하고 있지 않거나 그런 의사가 있더라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종 통계를 봐도 공공병원 의사 수급은 동일규모 민간병원보다 월등히 어렵다.

공공병원에 필요한 의사인력을 제 때 뽑지 못하거나 인력들을 뽑더라도 자주 그만두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공공병원 의사의 보수는 낮은 편이지만 근무조건과 환경은 민간병원보다 비교적 짧은 근무시간과 충분한 휴가가 보장된다는 면에서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충분한 보상을 원하는 의사들에게 낮은 보수는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가 된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시설장비에도 원인이 있다. 적절한 투자가 늦어져 의사가 원하는 진료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공공병원의 의사결정 구조는 민간과 달리 더디고, 필요한 시설장비가 신속히 공급되지 못할 때가 많다. 의욕적으로 일하고자 필요장비를 요청한 의사가 기다리다 지쳐 이직하고 나서야 장비구입이 성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공공병원 의사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성원에게 나아갈 방향을 일관성 있고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제시해 주는 것이 조직발전의 기본이다. 공공병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립 운영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 국민의 30%가 경험하는 미충족 의료를 해소하고자 하는 비전을 마음에 새기고 적정진료로 표현되는 공공적 진료를 통해 비록 적은 보수에도 보람과 긍지를 갖고 일하고자 하는 것이 공공병원 근무하는 의사들의 바램이다.

지방의료원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정사업기관이 아니라 스스로 수익을 얻어 운영하는 특수법인이다. 설립주체만 정부일 뿐 독립채산제에 기초한 점에서 민간의료법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적정진료로는 운영이 불가능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공공병원도 수익을 올리도록 의사들을 채근하고 공공적 행위보다 수익성과로 평가해 의사들을 차별 대우할 것을 요구 받는다. 이는 수시로 바뀌는 원장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생각에 따라 병원의 운영방향이 현격히 달라지는 데서 오는 의사들의 정체성 혼돈과 갈등으로 그 방점을 찍는다.

많은 의사를 만들어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설립목적에 맞도록 수익성에 치중하지 않고 공동체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운영할 수 있도록 공공병원에 충분한 지원과 배려가 있는 날, 의사(醫事)나 의사(醫士)가 아닌 진정한 의사(醫師)들이 공공병원에 가득 모여 보람과 긍지로서 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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