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국회의원의 주된 업무는 법률 제정이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황당한 법안’들이 발의될 때마다 입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발의된 보건의료 법안들 중 일부도 그렇다.

산부인과에서 임산부를 진료할 때 혼인 여부를 묻거나 기록을 남기는 것을 금지하도록 한 법안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은 미혼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을 방지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라 밝혔다. 하지만 윤 의원이야말로 미혼 임산부에 대해 의료진이 편견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듯하다. 임산부의 혼인 여부는 정확한 진료를 위해 필요할 수 있는 정보이며, 환자의 낙태·유산 경험, 성관계 유무 등도 진료하는 데 중요한 정보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을 영구 퇴출시키는 법안(원혜영 의원)도 발의됐다. 성범죄 의료인의 의료기관 취업을 10년 동안 제한한 ‘아동청소년성호보법’이 형평성 논란 등으로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법안이다. 공약으로 내건 의과대학 유치가 힘들어지자 아예 국립의대를 신설하는 법안(이정현 의원)을 발의한 경우도 있다. 정말 깊은 고민에서 나온 법안인지 의문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편승한 법안들도 많다. 대리수술 논란이 불거지자 수술실 CCTV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법안(최동익 의원), 수술 부작용 설명 의무화 법안(남인순 의원) 등이 잇따라 발의됐다. 전공의 음주 진료 사건이 터지자 마약을 복용하거나 술을 마신 뒤 의료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찬열 의원)도 발의됐다.

‘생색내기용 입법’도 문제다. 특정 직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안들을 발의해 놓고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복지위 소속 한 의원의 경우 특정 단체들이 요구해 온 내용들을 발의하지만 국회 통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법안 처리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단 발의하고 보자는 분위기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의원 발의 비율은 15대 59%, 16대 76%, 17대 85%, 18대 88%로 계속 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1만4,489건 중 의원 발의는 1만3,496건으로 무려 94%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원 발의 법안 중 처리된 법안은 4,226건뿐으로, 상당수 법안들은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될 전망이다. 역대 국회에서 접수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비율은 15대 57.4%, 16대 37.8%, 17대 25.5%, 18대 16.9% 등으로 떨어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법안을 발의해서는 안 된다. 통과 가능성이 없는 법안을 정치적 목적으로 발의하는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의원들의 신중한 의정활동이 요구된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