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의 직언직설


[청년의사 신문 김승환]

비단 의학드라마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드라마라도 등장인물이 다치거나 병으로 병원에 가는 장면이 종종 나오게 된다. 특히나 목숨을 잃게 되는 순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장면도 가끔 보게 된다. 그런데 의사, 특히나 응급실에서 직접 심폐소생술을 담당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정말 현실하고 괴리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심폐소생술 장면을 리얼하게 보여주면 안될까 생각한다.

심폐소생술의 핵심은 흉부 압박이며,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흉부 압박은 분당 100회 이상, 5cm 이상의 깊이로 눌러야 한다. 이런 압박은 실제로 엄청난 힘이 요구되는 술기다. 실제 심정지 환자라면 당장 심장을 뛰게 만들지 못하면 사망하는 것이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흉부 압박을 하면 종종 누르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냥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로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절대 따라하면 안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면 기관내 삽관을 실시하는데 이건 입안으로 튜브를 기관까지 집어 넣고 인공 호흡을 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의식이 명료한 사람에게는 그냥 할 수 없는 시술로, 이런 걸 하는 모습을 그냥 멀쩡한 연기자를 눕혀 놓고 보여줄 수는 없다. 특수한 모형을 이용하거나 절묘한 카메라워크와 편집으로 극복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연출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드라마 속에서 심폐소생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 주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환자가 끝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심폐소생술을 중단할 때까지 3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그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면 지리한 장면만 지속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시나리오 상 환자가 회복하거나 말도 안되게 쉽게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연출이 뛰어나다면 편집의 힘으로 잘 엮어낼 수도 있겠지만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심폐소생술 장면은 상황의 급박함에 비해 그리 드라마틱한 장면은 아니다. 심정지인 환자에게 처음 심폐소생술을 시작할 때는 의사와 간호사가 달라 붙어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한 명은 기관내 삽관과 인공호흡을 실시하며 2~3명이 돌아가면서 흉부 압박을 하고, 2분마다 심전도를 확인하며 제세동을 실시하고, 간호사들은 환자의 정맥로를 확보하여 약물을 투여하다 보면 정신 없이 상황이 돌아간다. 하지만 초기 시술들이 끝나면 흉부 압박과 5~6초마다 시행하는 인공호흡 이외에는 딱히 진행되는 것이 없는 것이 심폐소생술 과정이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눈으로 보여지는 장면은 더 드라마틱할 것이 없고, 이런 장면만 계속 보여주면 채널이 돌아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시작된다.

의료와 관련된 드라마의 자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단어 그대로 드라마틱한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자문과의 의견 충돌이다. 2011년에 연구된 바에 의하면 한국드라마에서의 심폐소생술 장면 중 64.1%가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하며, 환자가 소생하는 경우가 71.8%로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적당히 타협하여 제작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수치는 너무 높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드라마들은 시청자의 머리에 일반적인 교육보다 더 쉽게 뇌리에 남으며 잘못된 방법의 심폐소생술을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제는 흡연장면으로 인한 악영향을 우려해 드라마에서 흡연을 하는 등장인물을 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마찬가지로 그런점에서 시청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심폐소생술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려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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