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비정상 진료실


[청년의사 신문 김선영]

대장암을 주로 보는 나는 50여시간 가까이 주입되는 항암제 정맥주사를 처방하는 일이 종종 있다. 예전에는 다 입원해서 주사를 맞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인퓨전 펌프라는 지속적 약물주입장치가 도입돼 집에서도 항암제 투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진통제나 항생제 투여에도 종종 쓰이는 방법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장치여서 위생적이고 간편하다. 오심이나 구토도 이 방법으로 하면 훨씬 덜한 느낌인데, 항암제 유발 구토에는 환경 및 심리적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병원에 갈 생각만 해도, 병원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시작하는 환자들이 집에서 주사를 맞으면 안정을 되찾는다. 처음엔 어떻게 집에서 주사를 맞느냐고 손사래를 치던 환자들도 해보니 괜찮더라면서 왜 진작 이렇게 안했을까 후회하는 분들도 있다.

입원비가 비싼 외국에서는 이러한 장치를 이용해서 웬만한 주사치료는 대부분 외래에서 시행하고 있다. 얼마전 미국 유명병원의 주사치료실에 견학을 다녀온 우리병원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가장 독성이 강하고 위험한 치료 중 하나인 조혈모세포이식도 일부 환자들은 이식 직후 퇴원해 외래에서 약물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입원으로 소요되는 인건비와 감염 관리, 환자 안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고자 세계 각국에서 정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외래진료를 할 때면 늘 입원시켜달라, 웬만하면 다인실로 가게 힘 좀 써달라, (실제로 그러기는 힘들다)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정말 의학적으로 위중해서 입원이 필요한 경우는 당연히 환자가 집에 간다고 해도 잡아놓고 입원을 시키지만, 소위 사회적 입원이라고 할 만한 입원이 상당수 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다고 그것 전부를 ‘도덕적 해이’라면서 싸잡아 비난하고 막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가장 많은 것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민간보험 때문이다. 민간보험은 웬만하면 입원을 해야 치료비 보장을 해주기 때문에 수술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 치료가 외래에서 가능해졌음에도 환자들은 입원을 선호한다. 대놓고 ‘보험회사에서 돈 받아야 하니 입원시켜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드는 비급여 치료인데 환자의 생존기간을 연장시켜줄 수 있는 약제라면, 환자가 보험혜택 없이는 부담할 수 없는 비용의 치료라면 어떠한가. 월 약제비가 수백만원에서 일부는 천만원이 넘어가는 이런 비급여 치료약제는 신약개발속도가 빠른 종양내과에서는 비일비재한데 이런 경우는 환자 개인에게는 입원을 안시키는 것이 도리어 치료기회를 빼앗는 비윤리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절박한 경우를 민간보험사에서는 도덕적 해이라고 말하며 꼬투리를 잡고 소송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돌봄서비스를 받기가 어려운 현실도 입원을 조장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집안식구들은 다 직장생활과 학업으로 나가 있고 환자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가족구성원을 돌보느라 휴직을 하는 일은 대부분의 직장에서 어려운 일이기에, 항암제가 들어있는 인퓨전 펌프를 달고 있는 환자를 홀로 집에 두는 것이 불안하다는 가족들의 요구를 뿌리치기는 어렵다. 한편 여성 환자는 인퓨전펌프로 항암제를 연결해서 집에 가면 집안 청소 빨래 밥하기 이런 것들을 다 해야 하는 탓에 입원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남편들도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짧은 수준이다. 즉 여성은 환자가 되어도 가사노동의 부담을 떨치기 어렵다. 여러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모두 입원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입원을 좀 하면 어떤가? 병원은 돈 벌어 좋고 환자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아서 좋지 않은가? 의료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의학계의 상식이다. 입원기간의 연장은 병원획득감염 및 안전사고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것은 다 비용이다. 비용절감을 위해 소수의 미숙련인력으로 이를 관리하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이 의료사고이다. 환자에게는 다인실의 경우 입원비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가격 대비 좋은 서비스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환자에게 부담이 덜 갈 뿐이지 간접적으로 증가하는 합병증은 사회적 비용이 되어 건강보험 재정적자와 국민의료비를 상승시킨다.

정부에서는 불필요한 장기입원이나 경증입원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친다고 하는데 그 전에 왜 입원을 조장하는 환경이 조성되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자칫 저출산의 배경이 되는 고용 및 교육문제를 외면한 채 출산장려책만 펼치다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실패를 되풀이 하는 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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