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의 직무 수행토록 법 정비해야"…정부·마취전문의 "명백한 위법 행위"


[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필요해서 양성해 놓고, 정작 지금은 범법자 취급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마취전문간호사들이 그간 쌓였던 불만을 쏟아냈다.

정부가 마취전문간호사를 법으로 인정하고 양성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상 전문간호사의 자격만 규정돼 있을 뿐 역할과 업무, 배치기준 등에 대한 법률 규정이 미비해 업무와 역할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10년 의사의 지시가 있더라도 간호사의 진료보조행위 범위를 넘어서는 마취전문간호사의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 이후 범법자로 취급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 지역 한 산부인과의원에 근무하는 마취전문간호사 A씨는 "법적으로 인정된 면허를 부여받았음에도 범법자가 되는 현실이다. 물에 빠지기 전 살얼음판에 서 있는 기분"이라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았나. 정부가 대책을 세워줘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취전문간호사 B씨도 "2,000여병상 규모의 병원에서 20여년 간 일을 하고 있다. 혈관주사 등 의사 영역임에도 간호사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병원에서도 20년 이상 마취를 전문으로 한 간호사를 믿고 일을 맡기는 상황인데, 밖에선 범법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마취 전문 간호사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센트럴병원 김미형 마취전문간호사는 마취전문간호사의 역할을 정립하고 업무 범위를 법제화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간호사는 "지난 1960년 마취전문의 부족으로 환자들이 적기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취 전문 간호사가 양성됐다"며 "마취전문간호사의 정당한 마취진료보조 업무가 무면허의료행위로 처벌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무엇보다 고소, 고발 돼 위법한 판단을 받은 사례가 발생함에 따라 대다수 마취전문간호사들이 법적 책임 문제 및 윤리적 문제 등에서 갈등과 좌절을 겪고 있다"며 "법적 불안정성 때문에 활동이 위축되고 업무에 영향을 받고 있다. 업무범위에 대한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마취간호사회 김태민 전 회장도 “정부는 40년간 일관되게 집도의의 지시 감독 하에 이뤄지는 마취 행위를 적법하다고 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불법으로 판결했다”면서 “이 판례로 마취전문간호사의 직무수행에 혼란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마취전문간호사 제도는 있지만 마취 업무 수행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일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면서 “마취전문간호사 본연의 직무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련법과 규정을 제정하고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마취전문의들은 마취전문간호사의 마취 행위는 업무범위를 넘어선 불법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이국현 이사장은 “(마취전문간호사들이) 마취과 의사들이 부족했던 과거 큰 역할을 해준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간호사의 업무영역이 있고 의사의 영역이 있다. 마취 행위는 의사의 고유영역이기 때문에 간호사 단독 마취는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회 이일옥 고시이사는 20년 이상 일해 온 마취전문간호사와 이제 막 트레이닝을 마치고 온 전문의 중 누구에게 마취를 받겠냐는 질문에 대해 “자존심 상하는 질문”이라며 “위법으로 20년 간 일해 온 사람과 합법적으로 수련을 마친 전문의를 놓고 비교하라면 당연히 전문의를 더 신뢰할 것이라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이 고시이사는 “지금까지 해 온 마취 행위는 이미 불법이었다. 이제까지 위법행위에 대해 오인했다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달라. 마취전문의와 함께 팀으로 일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도 마취통증의학회 주장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임을기 의료자원정책과장은 “(과거 정부는) 마취의 경우 진료 보조행위로 할 수 있다고 봤지만, 다른 진료와 달리 사망사고 발생이 많았다”며 “이에 마취를 진료 보조의 영역이 아닌 의사의 직접적인 의료 행위의 영역이라고 본 게 판시의 주요 핵심이었다. 이후 유권해석을 다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국민도 불안해 한다. 종아리 알 제거 수술이나 치핵 수술을 하러 갔다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는데, 이유를 보니 마취사고였다”며 “일반 의사도 마취할 수 있지만 그 의사도 못 믿겠다고 한다. 마취전문의만 마취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간호사 제도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임 과장은 “마취전문간호사뿐 아니라 전문간호사제도 자체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전문간호사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추가적으로 배우지만 임상 현장과 괴리되는 형태로 배출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합할 부분은 통합하고 정리가 필요한 부분은 정리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치매 환자가 늘고 있지만 치매 환자 특성 상 간호사들이 치매 환자를 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임상 현장에서 필요한 형태의 전문간호사가 배출된다면 국민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국민이 호응하고 의료 현장에서도 필요해 상승작용이 난다면 보상체계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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