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실손보험 가입돼 있나요?” 요즘 병원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꼭 물어보는 말이다. 실손보험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 또는 통원치료 시 발생한 의료비 중 환자가 직접 내는 금액을 보상해주는 민간보험이다. 실제 손실을 보장한다 해서 이렇게 불린다. 본인 부담금의 90%까지 보상했다가 올해 4월부터 80%로 내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실손보험 가입자는 2,800만여명이다. 전 국민의 56%, 즉 두 명 중 한 명꼴로 가입돼 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느냐고 묻는 것은 그 질문 하나로 환자가 진료비 부담을 어느 정도 느끼는지 간단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스라면, “진료비 부담 걱정 덜고, 치료나 잘 해보자”는 말이 된다.


이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 이미 보험료를 낸 가입자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많이 타야 유리하다는 인식이 잡혀 있다. 실손보험 중복 가입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입원 날짜 수에 따라 보상금이 달라지니 환자들은 더 오래 입원하려 하고, 의사들은 더 고가의 의료를 제공하려 한다. 대학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고 나서 요양병원이나 중소병원에 의례 입원하는 것도 새로운 의료 이용 패턴이다. 외래에서 찍어도 될 MRI나 CT를 굳이 입원해서 하기도 한다. 가입자들은 적극적인 건강 증진을 통해 의료비를 낮추려는 절박한 이유가 없고, 가정 간호나 원격의료 서비스를 선호할 동기가 없다. 문제는 그렇게 들어간 진료비의 상당수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한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이 실손보험 가입자의 과잉 경향의 진료 비용을 대주는 셈이다.

실손보험을 파는 민간보험회사들은 건강보험에 무임승차 해 이익도 가져가고 있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 상급 병실료 보험 적용 확대, 환자가 직접 내는 선택진료비 축소 등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이 올라간 것에 따른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반사이익이 2조5,379억원에 이른다(새정치연합 김용익 의원실). 건강보험 적용 폭이 늘고 비급여가 줄면서 환자 부담 금액이 적어진 데에 따른 무노동 이익이다. 그렇다면 가입자의 보험료를 낮춰야 하나, 아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 의원 추계대로라면, 민간보험사는 보험료를 연평균 최대 11% 낮춰야 한다.

민간보험사가 병의원의 비급여 진료에 시시콜콜 관여하는 경우도 늘었다. 요즘 가입자들은 보험사로부터 무슨 연유로 비급여 진료를 받았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 비급여 진료와 관련해 민간보험사와 갈등을 빚는 병의원이 너무나 많다. 도수치료, PRP, 세포 치료 시술, MRI 촬영 등 항목도 가지가지다. 의학적 효용성이 없는데도 비급여 의료행위를 남발하면 당연히 제지를 받아야겠지만, 민간보험회사들로부터 일괄적으로 사기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비급여 진료는 민간보험 가입자의 혜택과 관련된 부분이고, 비급여 때문에 민간보험에 가입한 것인데, 보험사들이 현행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인정 기준을 이용해 가입자의 선택권은 제쳐놓고 의료 공급자만 과하게 징벌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러다가는 신의료기술 개발이 죄다 실손보험의 덫에 걸리지 싶다.

건강보험의 부실한 보장성을 메우려고 시작된 것이 실손보험이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보험 체계에 편승해 이익을 내고, 합리적 의료 이용에 악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 건보재정에 부담을 주고, 건강 증진에 대한 동기 부여를 약화시키는 것같아 우려스럽다. 금융위원회가 이런 실손보험의 역기능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걱정된다. 국가 주도 단일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나라에서 민간의료보험이 여전히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국 공적의료보험 체계가 여전히 미생이라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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