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근의 지구생각

[청년의사 신문 이명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첫 단계로 환자를 진단해 정확한 병명을 밝히고 그에 따라 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 의료계의 유명한 노교수가 정년퇴임 하면서 그동안 환자 진단에 당신도 오진을 많이 했었다는 회고를 한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미국의 존스홉킨스(Johns Hopkins)대학병원도 오진율이 20%에 이른다는 발표도 한 적이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의료분야에 많은 발전이 이뤄져 왔다. 그중에서도 x-ray, 초음파 진단기, CT scan 등의 장비가 개발이 되어 질병진단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각종 생화학적 검사기기 등이 역시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진단기기의 발달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진단이 가장 중요한 분야라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사가 진료 초기, 환자의 상태를 잘못 진단하면 이후의 치료방법이 아무리 잘 진행된다 할지라도 환자의 병을 잘못 치료하거나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우리가 저개발 국가나 사회를 대상으로 의료봉사나 보건 분야 지원을 할 때도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국가나 지역사회의 문제점과 현안을 정확히 진단해 그들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그에 따른 알맞은 대책과 해결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만약 그 사회를 잘못 진단하게 되면 우리가 많은 시간과 물자로 그들을 지원을 해도 그 지역사회의 보건의료 발전을 기대하기 보다는 자칫 부작용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몽골, 북한 등 현재나 과거 공산주의권 나라들은 공산주의 특성상 우리보다 많은 의료 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나라에 의료 봉사를 위해 우리의 많은 의료진을 보내 무의촌 진료 같은 것을 해주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돕고 싶다면 그 나라나 사회의 의료진의 역량강화를 위해 신경을 써주는 것이 좋다.

반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과 같이 의료진이 절대 부족한 나라들이 있다. 이런 나라의 농촌이나 낙도나 산간 오지에서는 의료진을 구경하기 힘들고, 간호사도 없는 지역이 적지 않다. 이런 나라에서는 우리의 단기 의료봉사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그들 스스로 역량을 강화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대도시에는 의료진이 있지만 급여나 생활 여건 때문에 지방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지방에는 무의촌이 많이 있다. 이러한 지역 간 수급 불균형 문제로 인한 무의촌 문제를 우리의 단기 방문 봉사로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도와주고자 하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를 갔을 때, 그 사회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할 필요가 있다. 그곳의 경제, 사회, 인구 상황은 기본이고, 병·의원 수, 의료진 수, 의료보험이나 보장 종류, 의료비 지불 형태, 의료수가가 수입 대비 어느 정도인지 등 의료 정책과 관련된 자료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또 이 지역에 가장 흔한 질병은 어느 것이고, 주 사망원인은 어떤 것인지 등은 꼭 필요한 기본 정보들이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돈 때문이기는 하지만 왜 가난한 주민들이 병이 있을 때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지 등에 대한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렇지만, 병원을 이용하는 패턴을 보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사람들은 몸이 불편해도 병원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매일매일 일을 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병 치료를 위해 하루를 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낙도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봉사단이 갔을 때 봉사단이 활동할 마을의 중심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어렵게 시간과 비용을 내서 현지에 갔을 때 주로 우리가 돕는 사람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돕기를 원하는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넉넉한 중산층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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