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혜선] 50개 제약사로 구성된 한국제약협회 이사회가 지난 1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불공정거래 근절을 목적으로 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최근 제약업계는 윤리경영선포식을 비롯해 워크숍 등을 개최하며 윤리경영 정착에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여전히 리베이트 조사 소식이 들리고, 실제로 조만간 조사 결과가 발표될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보란 듯이 윤리경영을 선포했는데,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제약협회가 꺼내든 패가 ‘무기명 설문조사’다.

협회 이사진들이 익명으로 ‘회원사 중 불법 리베이트 행위가 여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약회사 1개~3개’의 명단과 그 이유를 적어내면, 제약협회가 이를 취합해 다수의 이사들에게 지목된 회원사에게 비공개로 경고하는 방식이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공정거래행위로 사법당국에 적발될 경우 협회 차원에서 가중처벌을 탄원하는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이번 설문조사 아이디어는 각 제약사 CP담당자들로 구성된 ‘자율준수관리분과위원회’에서 나온 것” 이라며 “이름이 거론이 됐다는 사실을 CEO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며 설문조사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제약사들은 동료이면서 경쟁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서로의 행보를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무기명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리라. 하지만 누군가 이 설문조사가 실효성을 갖겠냐고 기자에게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일단 조사권이 없는 제약협회가 설문지에 적어낸 기업이 실제로 리베이트를 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극단적으로 해당 CEO가 헛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또 어떤 회사가 불법 리베이트를 하면서 언젠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겠나. 정말 리베이트를 하고 있던 회사였더라도, CEO가 안 걸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사회 내에서도 제약사 규모에 따라 그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그 중 영향력이 큰 회원사가 설문조사에서 거론돼 실제 적발됐다면 이후 협회가 가중처벌을 탄원할까? 무기명 설문조사가 제약협회의 보여주기 식 이벤트가 아니길, 기자의 예상이 깨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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