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여성, 한약 2개월 먹고 간부전으로 사망…재판부 "한의사에 배상책임"의료계 "경종 울리는 판결" vs 한의협 "한약이 사망원인 아니다"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20세 여성이 의학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두달여 동안 한약을 복용하다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한의사에게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망 원인이 한약에 의한 간 기능 손상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접촉성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내원한 박모 양에게 H한의원 원장인 한의사 김모씨는 ‘소화기 장애로 인한 면역체계 이상’이라고 진단한 뒤 “양방 치료와 양약 복용을 중단하고 1년간 한약을 복용하면 체질이 개선돼 완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의사의 말대로 두달여 동안 한약만 복용한 박 양에게 황달 증세가 나타났지만 한의사는 ‘변비로 인한 독성 때문’이라며 한약을 계속 복용하라고 했다. 결국 박 양은 간의 80~90%가 손상돼 간 이식 수술을 받았으며 4개월 뒤 전격 간 기능 상실에 의한 패혈증 등으로 사망했다.

박 양의 부모는 사망원인이 한약에 있다며 한의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며 1,2심 재판부는 물론 대법원도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1,2심 재판부는 “많지는 않더라도 한약을 복용한 후에 간 기능의 손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분명히 발생하고 있다”며 “한의사는 약재의 효능과 부작용 등에 대해 정통해야 할 전문가이므로 간 기능 이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약재를 처방하는 경우 환자에게 나타날 이상 징후들을 면밀히 관찰해 대처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양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랜드마크 윤서욱 변호사는 “황달이 왜 생겼는지 알아봐야하지만 한의원은 그런 진찰을 할 수 없으니까 종합병원에 보내 혈액검사를 하도록 했어야 했다”며 “황달 증세를 발견했을 때 한약 복용을 중단시키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켰으면 전격성 간염까지는 안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박 양이 삼성서울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간의 90% 이상이 소실된 상태였기 때문에 간 이식 수술로 인한 부작용보다는 정상이었던 간을 나쁘게 만든 한의원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봤다”며 “H한의원 원장은 한약이 아닌 해열제가 간 기능 손상에 영향을 줬다고 주장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삼성서울병원 등에 사실조회를 한 결과, 해열제를 먹었다고 바로 간이 나빠지지는 않는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현재 이 사건에 대한 형사 재판도 진행 중인데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며 “대법원 판결이 곧 있을 예정인데 이번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약 먹고 간 나빠졌다는 환자 경험하지 않은 의사 없을 것”

이같은 법원 판결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반겼다.

대한간학회 한광협 이사장(연세의대 소화기내과)는 “간을 전공하는 의사치고 한약을 먹고 간이 나빠졌다는 환자들을 경험하지 않은 의사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대게 한약은 여러 가지 한약재가 섞여 있기 때문에 환자가 먹었다는 한약이 어떤 성분인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그동안 이런 사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소송으로 가서 판결까지 나온 경우는 드물다”며 “이번 사례는 간 질환 경력이 없는 환자가 한약을 복용하면서 악화됐고 그에 대해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으로 인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다. 약을 오남용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한의사들도 환자들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약을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해 주의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한약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한약 등도 객관적인 검증 영역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대법원이 인정해 준 것”이라며 “한의사마다 약효가 다르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과학적인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관계자는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판결을 내려준 것은 환영한다”며 “한방에서 한약은 간에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했는데 환자들도 이제 제대로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의협 “이부프로펜-한약재 혼용하지 말았어야”

하지만 한의계는 한약 부작용으로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번 판결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판결문 어디에도 해당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이 환자를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며 “오히려 청주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지난 2012년 2월 2심 판결문을 통해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복용의 부작용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전격성 간부전이 발병하거나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고 말했다.

한의협은 이어 박 양이 이부프로펜 성분이 든 해열제를 복용했으며 특이체질 소유자였다고 강조했다.

한의협은 “이번 사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환자가 한의사와 아무런 상의 없이 양약인 이부프로펜과 한약을 모두 복용했다는 사실과 환자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한약이 아니라 간이식수술에 의한 부작용이었다는 사실, 환자가 특이체질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라며 “경우에 따라 심각한 간독성을 유발하기도 하는 이부프로펜의 경우 일부 한약재를 혼용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이같은 유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환자의 사망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만일 환자가 이부프로펜을 복용하기 전에 한의사와 상의하고, 한의사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같은 불미스러운 의료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문제의 H한의원 원장도 2심에서 한의협과 같은 주장을 했지만 재판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실조회 회신과 건양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진료기록감정회신 결과를 근거로 “이유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대전고등법원 청주제1민사부는 지난 2012년 11월 27일 ▲이부프로펜이 간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확률은 0.1% 정도인 점(식약청 사실조회회신) ▲건양대병원의 진료기록감정회신결과 이부프로펜이 최초의 간 손상을 일으킨 원인으로 생각하기 어렵다고 감정한 점 ▲망인을 진료했던 삼성서울병원도 이부프로펜의 일 회 복용으로는 그 다음날 황달이 올 가능성은 없다고 회신한 점을 강조하며 “무엇보다도 망인은 황달과 고열, 두드러기 증세가 발현된 후 위 증상 때문에 해열제인 위 약품을 복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이부프로펜을 복용했고, 이부프로펜도 간독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피고(김 원장)의 과실과 결과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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