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의 좌충우돌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한국 공무원의 절반이 KTX 안에 있단다. 중앙부처가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 하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정작 만나야 할 사람, 중요한 사람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당연히 서울로 오가는 공무원이 길거리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균형’ 또는 넓은 의미에서 ‘평등’은 어느새 한국 사회에서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는 공리 수준의 덕목이 됐다. 중앙정부 부처를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옮기는 것에 반대하면 국토의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이기적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인재와 자본, 문화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수혜는 오직 집중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혜택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지역으로 균등하게 배분돼야 정의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지역 균형의 명분을 내세워 중앙부처를 지방으로 옮긴 정책결정자는 세계가 ‘편평(flat)’해졌다는 주장을 편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국가와 지역 사이를 가로막던 지리적 장벽을 허물었다는 것이다.

편평한 세상을 외치는 사람이 볼 때, 특정 지역을 거주지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감수하는 비효율성은 그저 헛된 아등 바등에 불과하다. 지역은 더 이상 우리네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는 게 그 이유다. 정말 그럴까?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쓴 리차드 플로리다 교수에 따르면, 세상은 절대로 편평하지 않다. 오히려 경제적 관점에서 산 정상과 언덕이 특정한 지역에만 집중돼 있다. 따라서 세상은 편평하지 않고 대신 ‘뾰족(spiky)’하다.

세상이 뾰족하다는 플로리다 교수의 주장은 실증 자료로도 뒷받침된다. 사람들은 특정 지역(대부분 도시)에 몰려 산다. 경제적 활동을 반영하는 전력 사용량도 그렇다. 혁신의 결과인 특허 출원도 특정 도시에 집중돼 있다. 무엇보다, 영향력이 큰 과학자와 첨단 기술인력은 몇몇 도시에서만 살고 있다. 창조적 인력이 특정 도시에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혁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이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교수의 말을 빌면, 창조적인 사람에게는 창조적인 환경보다 창조적인 (또 다른) 사람이 더 필요하다.

결국 창조적 인력이 특정 도시에 몰림으로써 상승적으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혁신의 경제적 과실은 다른 사람을 유인한다. 좋은 학교, 편리한 기술, 수준 높은 문화, 안락한 환경 - 특정한 도시로 사람이 몰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이러한 집중이 한 국가의 부 축적을 주도한다. 따라서 지역 균형론은 이처럼 당연한 이치를 억지로 거스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참여자의 숫자로 나눈 기계적 평등 담론이 자리 잡고 있다.

균형 발전을 앞세워 그나마 충분하지 않은 국가 재정을 자기 출신 지역으로 갖고 가겠다는 정치인의 야심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뾰족하다는 관점에서 이들 주장의 근본이 튼실하지 않음은 모두 도긴 개긴.

최근 안동시와 여수시가 의대 신설과 대학병원 유치 의향을 본격화했다. 그렇지 않아도 과한 의대 숫자를 더 늘리겠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더군다나 최근 불거진 것처럼, 신설 지방의대와 병원의 열악한 교육-수련 환경은 의사의 질 저하로 이어질 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지역 균형론의 허구성에 있다. 시대정신에도 한참 뒤떨어진다. 사람들이 몰리는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느 과학 선진국도 지역 균형론을 내세워 특정 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지역의 균형 발전을 논하지 말자. 병원도 의대도 더 몰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신 있다면 변방을 배회하지 말고 서울로 올라 오라. 그리고 KTX는 일반 승객에게 돌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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