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의 직언직설

[청년의사 신문 김승환] 지난 17일, 서울시에서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 재난분야 교수, 전직 소방관 등의 전문 인력을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자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응급상황 발생 시 초기대응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 예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통합시스템을 활용해‘옆집 의사’에게 응급상황을 알리고 구급대원보다 심폐소생술을 빨리 시행할 수 있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일단 민간의 전문 인력을 재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재난 방지 및 대응의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는 것이 맞으나, 실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가능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민간 인력의 풀을 구축하고 관리하며 연락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재난이 공공의 능력을 넘어섰을 때 해당되는 일이다.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공공의 업무는 공공의 영역에서 처리해야 한다. 갑작스런 심정지 환자의 발생은 분명 응급상황이지만, 이것이 과연 민간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재난 상황일까.

게다가 이 시스템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현재 심정지가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신고자로부터 상황을 듣는 것 밖에는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신고자가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신고상황을 심정지로 추정하고 대처하게 된다. 그 중 상당수는 사실 심정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근처의 의사가 자신의 업무를 중단하고 달려갔으나 사실 ‘별 일 아닌 일’이 수시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그런 연락 자체를 일상적인 가짜 경고(false alarm)로 생각해 무던해질 수 있다.

또 의료진에게 문자 등으로 연락이 왔다고 한 들, 환자에게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당연히 먼저 반응하고 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 어딘가의 일을 연락 받아서 움직이기에는 시간도 걸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에는 구급대보다 빨리 도착하기 어렵기 쉬어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다.

또 개인 정보 보호의 문제도 심각하다.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주변의 자원한 의사들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은 ‘통합자원관리시스템’에 자원을 한 의사는 서울시에게 자신의 위치를 추적할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개인 정보의 유출이다. 심정지가 의심되는 신고가 발생할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단지 의사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문제점에 더불어 의사들이 불편해 하는 것에는 정부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의료진의 자원이 필요한 정책임에도 의사 단체들과 전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의사들은 ‘응급 상황이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동원 가능한 자원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불쾌감도 느끼고 있다. 또 말로는 자원자에 한해 실시하겠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원자 확보 실적을 위해 병원에 직간접적인 압박이 있을 거라는 의심도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공공의 업무를 민간에게 슬쩍 넘기는 것이란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특정 누구에게 문자나 스마트폰으로 연락하는 것보다 병원에서 심정지 방송을 하는 것과 같이 해당 지역에 공개적인 방송을 하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민방위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경보를 방송하기 위한 방송 시설들이 마을마다 있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차라리 주변 지역에 방송을 해서 도울 수 있는 사람 누구라도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취지에 맞을 것이다.

민간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이 아니라 공공의 능력을 벗어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평소에 필요한 전문가의 인력 풀을 관리하고 필요하면 교육이나 훈련 등의 지원도 하면서 유지해 나가야 한다. 현실성 없이 생색내는 정책으로 오히려 이런 인력 풀 관리에 민간 영역의 반발심만 산다면, 실효가 없는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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