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략기획단장

[청년의사 신문 이주호] 11만 의사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장 선거가 한창이다.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지배할 대표들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제도로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는 구성원들의 요구를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중요한 정치적 과정이기도하다.


5명 후보 면면과 공약을 살펴보니 나름 흥미롭다. 최근 의협이 투쟁을 많이 하다 보니 각 후보가 노동운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결’, ‘혁신’, ‘추진력’, ‘판을 엎어라’, ‘혁명’ 등을 키워드로 공약을 만들고 차별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강제지정제 폐지, 의대 정원 축소, 한방 퇴출 등 다소 오른쪽에 치우친 공약도 있지만, 원격의료 저지, 회원투표제, 회원총회,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전공의노조 인정, 강력한 대정부 투쟁과 의협 내부 개혁 등은 전체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는 듯하다.

아쉬운 점은 선거 쟁점에서 현재 의협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과 전략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 의협은 최고 지도자의 소통 능력과 전략부재로 인해 회원 개개인은 한국 최고 전문가 집단인데 비해 그 회원의 총화인 의협은 한국 사회에서 중간도 못가는 조직으로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의협 회장의 애매한 행보로 인해 국민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자단체로서의 병협과 전문가 집단의 대표로서 의협을 구분하지 못한다. 다만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같은 의사’로만 기억한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전체 의사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개원의들만의 조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병원계에서 후생성 장관보다 더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인물이 의사협회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 각 후보들이 한번 곱씹어볼 문제라 생각한다.

또한 후보들은 의사가 힘들다면서 분노를 담아 많은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겠다는 것인지 정교한 로드맵은 보이지 않아 아쉽다. 작은 전투에는 열을 올리는데 큰 전쟁을 이기려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의협 투쟁을 지켜보면 투쟁을 선동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결과는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다. 투쟁은 그냥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조직’하는 것이다. 승리하는 병법의 기본은 회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상대방을 ‘최소화’하고 우군을 ‘최대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담은 더 큰 연대가 필수적이다. 우리 의사만 뭉치면 이긴다는 자만과 잘못된 가설을 버려야한다. ‘이불속에서 만세’ 부르는 식의 자기만족적 투쟁으로는 안된다. 의사 자신들만의 협소한 이해관계에 기초해서 저수가와 악법, 규제 철폐만 외칠 것이 아니라 의사와 노동자, 환자와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상생의 의료시스템을 만드는데 앞장서야한다.

의료재정 체계에서 건강보험을 ‘저보장-저수가-저급여’ 의 3저 시스템에서 ‘적정보장-적정수가-적정급여’라는 3적정 시스템으로 바꾸고, 의료공급체계에서 1-2-3차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면서 지역병상총량제를 도입하자는 큰 그림속에 의사들의 요구를 녹여내야 한다. 이런 전략적 행보를 하지않는 한 ‘의사의, 의사에 의한, 의사들을 위한 투쟁’은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또다른 아쉬움은 후보가 모두 남자이고 개원의 중심이고 공약도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여성후보’도 나오고’, ‘청년후보’도 나오고’, ‘교수후보’도 나오고’, ‘진보후보’도 나와서 역동적이고 ‘컬러풀한 선거전’이 되지못하고 있다. 흥행에 실패해서, ‘그들만의 리그’라는 평가도 들린다. 선거 쟁점도 현안문제를 넘어 환자안전, 주5일제 시행과 진료시간 단축, 모성보호, 젠더 문제, 사회적 대화와 연대 문제 등으로 더 넓어지고 다양했으면 좋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이런 의협 회장을 기대해본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야간당직중인 전공의들을 찾아 격려하고, 전공의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는 분.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첫 행보로 환자단체를 방문해서 환자들의 고충을 듣고 환자안전을 위한 공동활동을 약속하고, 이어서 의료계 맏형답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각 직종단체와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을 방문해 원격의료 저지와 의료민영화 반대,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의료혁명, 상생의 의료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보건의료인 모두가 함께 힘을 모으자고 먼저 손을 내미는 그런 통 큰 지도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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