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리온 긴급구호대 1진 팀장 신형식 NMC 센터장 "감염병 진료 경험 필요"


[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지난해 12월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에라리온으로 긴급구호활동을 위해 출국했던 1차 긴급구호대가 21일간 격리기간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했다. 해외에서 발생한 감염병 확산을 진압하기 위해 국내에서 파견한 첫 긴급구호대인 만큼 귀국한 이들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의사가 환자 치료 중 감염 위기에 놓여 독일 샤리떼 의과대학병원(Charite University Medicine Berlin)으로 후송된 바 있어 긴장감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에볼라 바이러스와 고요한 사투를 벌이던 해외 긴급구호대 1진이 건강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왔다. 이에 해외 긴급구호대 1진을 이끈 국립중앙의료원(이하 NMC) 신형식 감염내과센터장을 만나봤다.

- 에볼라는 순식간에 2만3,000명을 감염시키고 9,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바이러스다. 정부에서 해외 긴급구호대 파견을 결정했지만 145명이 지원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지원자 모집을 했을 때 145명이 지원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해외 긴급구호대 1진 의료진 모두 사명감을 갖고 지원했더라. 서아프리카 지역에 의료체계가 붕괴되다시피 한 데다 치료 받지 못한 환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가서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냐는 인도주의적 사명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또 NMC에서 근무하는 감염내과 의사로서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파견 목적을 국격에 맞는 역할을 다하고 선제적 방역활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를 국내 의료진이 직접 치료함으로써 감염병 환자 발생 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올 수 있다는 점 등에 두고 있었는데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 감염관리 체계 미흡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던 때였다. 불안감은 없었나. 더욱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꾸려진 해외 긴급구호대였기 때문에 부담감도 상당했을 것 같은데.

만약 긴급구호대 파견 중 감염 되더라도 정부가 치료 받도록 지원해 줄 거라고 생각했고, 당시 현지 사망률이 50~60%였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 치료를 하면 10% 이내로 줄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피치 못할 사고로 인해 감염됐을 경우 사망률은 0.1% 정도라고 생각했다.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부담은 따로 있었다. 1진으로 파견되면 국내 의료진을 이끄는 팀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했다. 정부 원칙이 감염되지 않는 안전한 진료였기 때문에 의료진 10명 모두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는 게 중요했다. 때문에 팀원들 모두가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팀을 이끌어야 하는 부분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또 감염내과 의사는 10명 중 1명인데 감염내과 의사인 내가 감염되면 어떻게 하나, 죽음보다 오히려 그런 부담감이 더 컸다.


▲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 투입 전 출입 시간과 의료인 이름을 보호 장구에 적고 있다 김은영 기자

-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에 들어서면서 인상 깊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시에라리온에 들어가기 위해 150석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일반인은 거의 없고 의료진으로 가득 찬 비행기 안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벅찼다. 우리 의료진 10명, 영국 의료진, 노르웨이 의료진?. 수많은 의료진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 에볼라 확산 억제를 위해, 또 환자 치료를 위해 가는 모습을 보니 이런 사명감 가진 사람들이 참 많구나, 동료의식이 느껴졌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엄격한 검역활동에 시에라리온에 왔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과 현실감은 에볼라 치료소에 들어서며 더 커졌다. 여기저기 뿌려지던 소독약에 의료진을 보면서 ‘이제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국내 긴급구호대원 한 명이 감염 위기로 독일로 후송되는 상황도 겪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현장에서는 어땠나?

현장에서 이탈리아 의료진도 걱정 해주고 격려 해줬지만, 다들 많이 힘들어 했다. 그 당시 우리 의료진은 많은 환자들을 볼 때였다. 마음도 아프고 같이 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들었다. 그것 때문에 간호사 한 명은 많이 울기도 했다.

감염관리 측면을 생각하기보다 환자 치료에 열중하게 된 의료인 본능이 더 작용했기 때문에 감염 위기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치료 중인 의료진 김은영 기자

-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어떤 환자가 상황이 좋아졌다가 갑자기 나빠졌는데 그 상황에서 보호 장구 때문에 직접 촉진하고 청진할 수 없었다. 의료진과 상의해 치료 했는데 다음 날 사망했다. 우리가 제대로 진료하지 못한 상황 때문에 환자가 사망했을까 의사로서 자괴감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가장 많이 남는다. 감염관리 개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 현장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안전 관리 등 환경은 잘 갖춰져 있던 상태였나?

에볼라 치료소마다 상황은 다를 수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아직 정맥주사 치료를 보류하고 있다. 우리 의료진이 있던 가더리치 치료소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던 곳이다. 정맥주사는 물론 신장투석도 했다. 1월 초까지 우리 의료진도 일반적인 치료나 정맥주사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국내에도 알려져 있는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어서 안전에 문제될 건 없었다.

- 우리나라 의료진의 의료 수준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경험한 신증후군 출혈열은 그쪽(서아프리카 지역의) 바이러스 계통에 속한다. 이런 바이러스는 에볼라와 임상증상이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 열이 나고 쇼크에 빠지고 소변이 안 나오는데 에볼라 증상이 처음 열나다 쇼크에 빠지고 소변이 안 나오다가 콩팥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여기에 에볼라는 구토에 설사 등 위장관 증상이 나타난다. 감염관리 측면에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 한국형 바이러스에 대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환자 진료, 치료 면에서 우리나라 의료진이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긴급구호대 1진에 참여한 의사와 간호사 모두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충분한 역량을 발휘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진료 방식은 의사나 간호사나 거의 동등한데, 간호사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의사는 진료를 결정하는 중심에 있었다면 간호사들은 환자와 밀접하게 맞닥뜨려 일을 했다. 채혈은 의료진이 같이 했지만 환자 체위를 변경하고 몸 닦는 일은 간호사들이 도맡아 했다.


- 이번 파견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국내 훈련 때도 보호 장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고 벗는 과정이 숙달 되도록 많은 연습을 했다. 더욱이 시에라리온에서 진료하면서 개인 보호 장구를 입고 벗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우리나라에 없는 진료 시스템이나 진료 경험, 에볼라 치료센터 등을 통해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대륙 등 우리나라에 없는 전염병들이 언제, 어디서든 생겼다 없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검증된 수준 높은 의료진이 해외에 진출해 세계 감염병 진료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다면 어떤 전염병이 국내 유입 돼도 즉각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해외 파견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원지동 이전을 앞둔 NMC가 향후 감염병 센터 신설 시 중점을 뒀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국내의 경우 고도격리시설이 미흡하다. 기존 병실을 개조해 고도격리시설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긴 했지만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상비 인력이 있다면 이들을 1년에 한두 번 해외 파견을 보내 전염병 대응 능력을 키우고 세계 보건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이 구축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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