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 이어 산재·실손까지 심평원 심사 위탁 추진…의료계, 심평원 조직확대 반대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산재보험 뿐만 아니라 민간보험인 실손보험 심사까지 맡기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의료계는 물론 국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은 심평원을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된 심사기관이 아닌 국민의료심사평가원이라는 전문 심사기구로 독립시키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심평원이 자보는 물론 산재 등 다양한 보험에 대한 심사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실에서도 심평원에 실손보험 심사 위탁이 가능하도록 '실손의료보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고 있다.

김춘진 의원 측은 이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관련 단체들에 초안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의협과 병협은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협 관계자는 "모든 운전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자동차 보험과 실손보험은 다르다"면서 "공권력을 가진 심평원이 보험금 지급심사를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심평원 조직 확대와 민간보험의 공적기능이 확대되는 것이며 의료인에 대한 직업적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인이 진료비를 못받을 것을 우려하면 검사나 치료가 위축될 수 있고, 보험과 무관한 상업적인 의료서비스에만 치중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대한중소병원협회 홍정용 회장도 "비급여 위주인 실손보험을 국가기관에서 손 대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며 "필수적인 자보와 달리 실손 보험은 소득이 높은 사람이 가입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마저도 국가기관에서 심사하겠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복지위 "개인 의료정보 유출 우려 커"

뒤늦게 사실을 안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 역시 심평원이 민간보험을 심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복지위 한 의원실 관계자는 "위원장실에서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몰랐다"면서도 "지난 국감에서 위원장이 자보와 실손 같은 민간보험에 대한 심사조정업무를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식으로 발언을 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이러한 법안이 발의된다면 실손보험 가입자 즉,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이 우려된다"면서 "개인 의료정보는 실손보험사로 유출될 것이며 그로 인해 외부로도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심평원을 국민의료심사평가원으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남윤 의원실조차도 심평원의 실손에 대한 심사는 부정적이다.

남윤 의원실 관계자는 "자보 심사는 공적인 요인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심평원이 심사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심사까지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준비하고 있는 법안은 사회보험의 성격을 띤 부분까지만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의 요청으로 실손에 대한 심사조정업무를 심평원에 위탁하도록 하는 것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사안"이라며 "심사위탁을 맡기는 금융위가 갑이 되고 심평원은 을이 되는 상황이 생겨 금융위가 심평원을 휘두룰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개인정보 유출은 기우일뿐

이같은 우려에 대해 금융위는 기우에 불과하다며 개인정보 유출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실손 위탁과 관련해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사 위탁으로 개인의료정보 유출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입자가 청구한 내역만 심평원에 제공하도록 할 예정이며 이같은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평원 측은 사회보험에 대한 심사일원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도 실손보험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반응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국회로부터 심사업무 현황에 대한 자료 요청이 있어 전달했지만 실손 심사는 기존의 건보나 자보와 성격이 다르다"면서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법에 정해지면 심평원으로서는 못한다고 발을 뺄 수도 없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같은 논란에 대해 김춘진 의원실은 "아직은 의원에게 보고되거나 내부적으로도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한 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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