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섭의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청년의사 신문 최윤섭] ‘미래에는 의사의 80%가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선구자 비노드 코슬라는 2012년 이러한 과격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근거 중의 하나가 IBM의 수퍼 컴퓨터 왓슨이다.

IBM의 딥 블루가 1997년 체스 챔피언에게 승리를 거둔 뒤, 2011년에는 왓슨이 퀴즈 챔피언에게 승리를 차지했다. 미국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의 챔피언들에게 몇 배나 되는 점수 차이로 우승한 것이다. 퀴즈라는 제한된 조건이지만,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후 왓슨이 진출한 분야가 바로 암 환자 진료이다. 왓슨은 2012년 3월부터 메모리얼 슬론 캐터링 암 센터에서 폐암의 진료를, 2013년 10월부터는 MD앤더슨에서 백혈병 진료에 대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논문, 임상 시험, 케이스, 가이드라인 등을 학습하고, 수천 시간의 수작업 교정도 거쳤다.

그러던 지난 6월 미국 임상 종양 학회(ASCO)에서는 ‘닥터 왓슨’의 실력이 공개되었다. 200명의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왓슨의 권고안을 MD앤더슨 의사의 판단과 비교했을 때, 정확도는 82.6%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컴퓨터는 의사보다 정확하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필자는 이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물어야 할 올바른 질문은 ‘어떻게 해야 더 정확하게 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까’다. 의료는 체스 게임이나 퀴즈쇼가 아니다. 인간과 컴퓨터가 대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인간과 컴퓨터의 협력이 답이 될 수 있다. 체스와 퀴즈쇼에서 인간과 컴퓨터 모두 ‘답’을 내어 놓는다. 하지만 이 답의 도출을 위해 인간의 뇌와 컴퓨터 알고리즘이 거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 협력했을 때 시너지가 가능하다.

딥 블루와 인간의 대결 이후 또 다른 체스 대회에서 이 시너지가 증명된 바 있다. 딥 블루 수준의 수퍼 컴퓨터를 상대로 평범한 체스 선수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승리한 것이다. 인간과 컴퓨터가 서로 협력하자, 더 월등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의사와 컴퓨터의 관계 정립에도 실마리가 될 것이다.

기하급수적인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이러한 기술이 의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변화에 대처해야 하며,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협력하여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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