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한의계가 연일 현대 의료기기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상적인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도 아쉽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듯한 한의계의 주장은 기가 막힌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매우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면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의사에게 진료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의사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한의계에서는 극히 단순한 몇몇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일부 판결을 확대 해석하여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는 물론 엑스레이와 초음파 등의 영상장비까지 쓰게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의대 교육과정의 70~80%가 의대와 동일하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현재 법원이나 정부의 입장은 ‘보건상의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고, 작동이나 결과 판독에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장비’에 한해서 한의사에게도 사용을 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짧은 문장 속에 정답이 있다. 사실 이런 장비들은 한의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하지도 않고 전문적인 식견도 필요 없는데, 왜 굳이 특정한 면허 소지자만 쓸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의료기기의 사용을 한의사에게 허용해도 될지 여부를 판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반인도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의료인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기기들 중 일부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끔 바뀌는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의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안전하게 다룰 수 있고 결과를 쉽게 해석하여 활용할 수 있는 기기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의학의 민주화’라고도 부르는 이런 흐름은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혈당측정기, 혈압계, 산소 포화도 측정 장치 등은 이미 수많은 가정에 보급되어 있다. 스마트폰에도 적잖은 의료기기 기능들이 들어갈 것이다. 이런 기계들은 당연히 한의사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의사들이 허용을 주장하는 기기들은 차원이 다르다. 영상장비의 사용에는 위험이 따르고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 혈액검사도 마찬가지다. 혈액으로 알 수 있는 검사항목은 최소한 수백 가지이고, 그 많은 숫자들의 의미와 복잡한 상호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환자의 임상 증상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데에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적 식견이 필요하다. 의사 이외의 그 누구도 이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더 이상의 논쟁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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