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의 통(通)하는 의료

[청년의사 신문 김용찬] 새해가 시작되자 많은 흡연자들이 금연 결심을 했다. SNS를 사용하는 흡연자들 (‘전(前) 흡연자들’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작심삼일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중에는 자신의 SNS 페이지에 금연 각오의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유난히 이렇게 금연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해 시작된 담배세 인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어떤 사람들은 담뱃값 인상분이 너무 커서 선택의 여지없이 금연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를 올리려는 정부가 괘씸해서라도 이번에 담배 끊어야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뱃값 인상을 하나의 좋은 핑계로 삼아 금연을 결심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담배를 끊겠다고 신문 칼럼 같은 곳에서 ‘선포’한 경우도 있었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모 신문의 칼럼에서 유교수는 금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내가 담배를 끊은 이유는 담뱃값이 올라서도 아니고, 건강이 나빠져서도 아니다. 세상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미개인 보듯 하고, 공공의 유해사범으로 모는 것이 기분 나쁘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길에서도 담배 피울 곳이 없어 쓰레기통 옆이나 독가스실 같은 흡연실에서 피우고 있자니 서럽고 처량하고 치사해서 끊은 것이다.”

금연 결심 이유가 결국 (보건학의 말투로 굳이 번역해서 써보자면), 첫째는 사회적 규범의 압력, 둘째는 물리적 환경의 제약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담배 자체가 초래하는 직접 비용 (건강훼손, 담뱃값 등) 때문은 전혀 아니었다고 애써 부인하고 있다. 유교수로 하여금 금연 결심을 하게 한 것은 말이나 정보나 설득이 아니라, 담배피기 힘든 환경에서 맞닥뜨린 ‘눈길’과 ‘불편함’이었다. 거기에서 느낀 ‘기분 나쁜’ 감정과 ‘서럽고 치사한’ 생각 때문에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유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말로 설득하는데 치중했던 그동안의 금연 캠페인 전략에 중요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로 설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몇 주 전 미국 대학 한 곳을 방문해 보니 ‘금연 캠퍼스(Tobacco-free campus)’라는 푯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건물 내부 뿐 아니라 캠퍼스 전체가 금연 구역이었다.

미국 대학들이 학교 건물 주변 몇 미터 안에서는 담배를 필 수 없게 하는 규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제는 진일보하여 캠퍼스 전역에서 담배를 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정책을 시작한 학교가 올 1월 기준으로 미국 전역에 천 여 개가 넘어섰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는 ‘금연 캠퍼스 이니셔티브’ (Tobacco-Free College Campus Initiative)가 주도하고 있다. 그 효과에 대한 검증 결과는 좀 더 기다려야 나올 것이다.

하지만 금연을 위한 환경 변화를 정책적으로 이끌어낸 최근의 주요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금연 광고처럼) 메시지만 전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연 캠퍼스 구축같이) 금연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프로그램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금연 친화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까 생각할 때, 그것을 어렵게 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문제 하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담뱃값 인상은 금연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데에 도움 되는 변화였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건강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세수 확대라는 꿍꿍이속에서 담배세 인상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럴까? 궁극적인 이유는 정부가 여전히 KT&G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사람들은 계속 정부를 의심할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 의심이 계속되는 한 효과적인 금연 환경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금연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설 주체 중 하나는 의료계이다. 금연을 위해 의료계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고 금연 연구를 열심히 하는 등 그동안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금연 환경 조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길 기대해 본다.

우리 정부가 한편으로는 담배로 인한 수익의 직접 수혜자이면서 또 동시에 금연 예산을 쓰고 있는 모순된 상황을 바로 잡는 일, 실질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일을 위해서도 궐기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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