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김은영] 하루가 멀다 하고 단식이다. 의료인들 사이에서 단식이 유행인가 싶을 정도다. 최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등이 담긴 ‘규제 기요틴’(guillotine, 단두대)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단식 농성을 벌였던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이 6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는데, 이번에는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이 단식에 돌입했다. 김 회장은 지난 28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한의협이 상공회의소 앞을 단식 농성 장소로 꼽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이 규제 기요틴 논의를 이끌어 가고 있는 곳이 바로 상공회의소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한파로 기온이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데다 빌딩숲 사이로 볕도 들지 않는 길거리에서 천막 하나 없이 단식 농성은 시작됐다.

김 회장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규제 기요틴 국민건강증진의 지름길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해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잡아 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단식을 결심하게 됐다”며 “규제 기요틴이 성공적으로 실현돼 국민건강과 진료선택권이 보장되고 국민 불편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천막 하나 없이 온 몸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내며 국민 건강증진을 강조하는 심정은 구구절절하다. 하지만 물음이 꼬리를 문다. 한의협은 누구를 위한 단식을 하는 것인가. 얼마 전 의협 추 회장의 단식 농성을 두고 ‘배부른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던 한의협이다. 그 뿐인가. 단식을 ‘섣부르고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하며 국민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또 이들은 “단식과 같은 무리수를 계속 자행한다면 결국 국민에게 외면과 지탄을 받는 외톨이 신세로 전락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도 했다.

어쨌든 이날 상공회의소 앞에서 한 시간 가량 단식 농성을 벌이던 한의협 김필건 회장은 경찰의 퇴거명령으로 즉각 철수, 단식 농성 장소를 한의협 회관으로 바꿔 농성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한의협의 이같은 선택에 한편으로 씁쓸하다. 심정은 백분 이해하지만 자가당착 아니던가. 곡기를 끊을 정도의 절박한 심정과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전달하고 싶었다면 단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했어야 했다. 스스로가 비난했던 방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고, 정책 결정자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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