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선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청년의사 신문 조우선] 국무조정실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규제를 완화하는 취지의 정책을 발표했다. 한방의료행위와 의료행위의 명확한 법적 정의 없이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한의사와 의사의 면허의 범위가 결정되어 오던 과정에서, 정부가 갑자기 한의사에게 의료기기의 사용을 허용하는 취지로 규제의 빗장을 열겠다는 것이다.


의료기기법에서는 의료기기를 사람이나 동물에게 단독 또는 조합하여 사용되는 기구, 기계, 장치, 재료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으로서 질병을 진단, 치료, 경감, 처치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 상해 또는 장애를 진단, 치료, 경감, 또는 보정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 구조 또는 기능을 검사, 대체 또는 변형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 임신을 조절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료기기법 규정만을 살펴 보면 ‘의료기기’는 한방이나 양방의 구별을 하고 있지는 않은 중립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의료행위는 의료기기를 통한 의료정보의 수집 및 이를 통한 판단으로 이루어지고, 의료법은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수집된 정보를 근거로 정확한 질병의 진단 및 이에 대한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의료행위를 한방과 양방으로 나누어 이원적인 체제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의사라고 하더라도 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행위의 범위가 종합적으로 한의사에게 부여된 면허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이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에 대한 의료법 위반 사건에서 이와 같은 전제에서 ‘학문적 기초가 서로 다른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분리 체제 하에서는 자신이 익힌 분야에 한하여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는 면허를 가진 자가 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한의사들이 사용 허용을 촉구하는 의료기기는 CT, 초음파기기, MRI 등이다. 이와 같은 기기들은 양방에서도 영상의학과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전문의가 인체 및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진단을 하는 영역이다.

정부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무면허 의료행위의 형사 처벌이라는 규제를 풀고 한의사에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신사고, 의료기기를 통하여 수집한 정보의 판단 과정에서 지식 부족으로 오진에 이르는 경우 환자에게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단순히 업무상과실치상 혹은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으로만 규율할 수 있게 된다.

국가가 사후적 보전 조치만을 남겨두고 한의사에게 의료기기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공중위생에 대한 위해발생의 가능성을 예견하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것으로, 국가 의료제도의 목적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의료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한의사 단체 및 의료기기업체에 치우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규제 완화 정책은 지금까지의 사법부의 판결 및 사회적인 공감대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논리에 치우쳐 규제 완화를 일방적으로 강행하기보다는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의학적인 검토를 마친 후에 신중하게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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