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의 시장조사로 본 세상

[청년의사 신문 임성수] 보건 산업 주요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국내 제약산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Top of mind)을 질문해 보았는데 가장 많이 언급된 응답은 ‘리베이트’였다. ‘오픈 이노베이션’ 혹은 ‘신약 개발’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되는 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란 희망도 가져봤다. 그러나 동화약품 리베이트 사건을 보면서 그 희망이 잠시 주춤해지는 기분이 든다.


사실 한국갤럽에 입사하기 전에는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 성격의 조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꽤 많았다. 이런 리베이트 성격의 조사는 의사 답례비 부분이 높아서 회사에 맡기는 총매출 규모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높은 비중의 의사 답례비로 직접비 비율이 높아 회사의 수익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수익을 고려하지 않은 매출 불리기지만, 이마저도 규모가 작은 시장조사 회사 입장에서는 뿌리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유혹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 그런 의뢰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윗분들께 눈총도 받았다. 비리에 연루되지 않겠다는 일종의 정의감으로 그랬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정말 하기 싫었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사자가 설계한 문항이 아무 의미도 없고, 또 조사 결과가 실제로 유용하게 쓰일 데가 없다는 점에 있었던 거 같다.

이후 물을 흐리는 일부 시장조사 업체 때문에, 헬스케어 분야의 조사는 전부 사라질 것이란 비관적인 염려와는 달리 전문적이고 특수한 영역에 있어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진화한 느낌마저 든다.

헬스케어 시장조사는 대부분 애드 혹(ad hoc)으로 불리는 단발성 조사라 매출 규모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조사 결과가 제약회사 의사결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조사 과정 자체도 흥미롭고 신난다. 일을 의뢰한 회사의 담당자가 열정적인 경우에는 아슬아슬함과 즐거움이 배가 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얻고자 하는 바를 설문문항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라 즐거울뿐더러 결과를 빨리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조사인에게 때로는 압박(?)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흥미롭고 신나는 조사형태 중 하나가 ‘신규 치료제 론칭 조사’인데 아직까지 의뢰처 대부분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다. 최근 일부 선도적인 국내 제약회사들도 신약개발에 힘쓰고는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015년 조사인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국내 제약회사에서 의뢰 받은 ‘신규 치료제 론칭 조사’를 신나게 진행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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