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이정수] 특발성 폐섬유화증 치료제인 ‘피레스파’(성분명 피르페니돈)라는 약에 대해 보험급여를 적용해야 한다는 환자들의 요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민원게시판에 빗발치고 있다는 기사가 지난달 게재된 후 한 폐섬유화증 환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메일 내용은 이 약을 꼭 먹어야 하는 환자들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고, 의사들 중 환자에게 부담이 될까봐 초기나 중등도 이하 환자들에겐 얘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보험급여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환자는 정부의 행정처리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토로했다. 그는 폐섬유화증 환자들이 심평원에 직접 가거나 전화로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매번 ‘신속한 검토와 처리를 약속합니다’라는 뻔한 내용이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간질성 폐질환 중 하나인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호흡곤란과 함께 저산소증 혹은 심근경색 발생으로 인해 10년 생존율이 15% 정도에 불과한 중증 희귀난치성질환이다. 그나마 폐기능 감소 속도를 줄이는 것으로 알려진 피레스파(현재로서는 유일한 치료제)가 2012년에 출시됐지만,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은 매달 150여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약값만 2,000여만원이라는 소린데, 의사 입장에서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는 게 뻔히 보이는 환자에게 약 얘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을 듯싶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로지 ‘정부’ 바라기가 될 수밖에 없는 폐섬유화증 환자들로선 뻔한 답변만 되풀이하는 정부가 오죽 답답했으랴.

물론 정부 입장에선 이같은 민원이 한 두 개가 아닐 것이고, 보험재정도 고민해야 하며 정해진 행정절차를 무시할 수도 없으니 ‘신속한 검토와 처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폐섬유화증 환자가 보낸 메일을 보면 정부에 당부하고 싶다. 환자들이 정부의 답변을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게끔 해달라고.

치료법 자체가 전무했던 희귀질환자들에게 새로운 약제의 등장은 곧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원이 필요하지 않는 질환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런 특수한 경우라면 정부가 조금 더 유연하게 대응해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문제를 거론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기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잠재적 환자이며,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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