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략기획단장


[청년의사 신문 이주호]

지난 연말 국회에서 의미 있는 법 두 개가 통과됐다. 진주의료원처럼 지방정부가 마음대로 지방의료원을 폐업하지 못하도록 기준을 강화하고 착한 적자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진주의료원법)과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병원급 의료기관에 환자안전위원회와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두도록 하는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 두 가지 법에 주목하는 것은 사회적 쟁점 사항이라도 국민적 요구와 명분만 있으면 기존의 여-야, 보수-진보, 직역간 대립구도와 진영논리를 넘어 사회적대타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법 통과의 직접적 계기가 된 진주의료원 폐업은 해를 넘겨 재개원투쟁이 계속 되고 있지만 대응과 관련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줬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진주의료원 국정조사를 실시했고 감사보고서까지 채택했다. 그 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와 5개 보건의료단체(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가 공동대응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이후 ‘원격의료’ 반대 공동 대응에 이어 의료상업화와 의료비 폭등, 의료양극화 등 의료대재앙을 초래할 의료영리화 반대 입장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갈등과 대립을 반복했던 각 직역 사이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지만 소위 빅4병원과 대형 민간보험회사의 의료독과점체제, 의료민영화 정책과의 사이에는 더 넓은 한강이 가로막혀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럼 이제 이런 흐름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결론적으로 한국 의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책, 3저(低)를 3적정으로 즉, ‘저보장-저수가-저부담’ 시스템을 ‘적정보장-적정수가-적정부담’으로 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나아가야한다. 더불어 의료공급체계도 1-2-3차 전달체계 확립과 지역의료를 강화해야한다. 3저 시스템에 대해 국민은 물론 이해당사자간 불만족이 극에 달해 있고, 의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 온다는 진리처럼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012년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9.3%보다 여전히 낮다. 이 통계는 한국 의료는 앞으로 수십조원 이상 더 많은 재정과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의료산업은 성장산업으로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확대되는 재정과 인력을 바탕으로 ‘3저’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3적정’이라는 선순환구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럼 그렇게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뭘까? 그것이 바로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다.

작년 독일에서 1년 동안 유학하던 시절 경험한 바로는 급성기 질환의 경우 거의 무상의료 수준으로 보장성이 잘 되어 있었고 공공의료 비율도 높았다. 그런데 보험료는 15.5% 수준으로 한국의 5.99% 보다 2배 이상이었다. 이것은 독일만이 아닌 대다수 유럽국가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높은 보험료와 높은 수가, 높은 보장성과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같이 공존하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과정이 여야는 물론 노사정과 이해관계 당사자 간에 지속적인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산별교섭이 활발했던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100여개 보건의료 노·사 대표는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노·사·정위원회’ 구성을 합의했고 ‘건강보험제도 개선, 의료기관 공공성 강화, 보건의료예산 확대 등을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아직 그 합의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 합의정신과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의료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는 정부와 국회가 먼저 나서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6개 보건의료단체와 환자단체,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미숙한 토론문화와 지도력,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보건의료단체들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각 직역과 노사정간에 작은 이해를 넘어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야한다.

이주호 단장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전략기획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대 노동대학원 노동경제학과 석사과정과 독일 카셀 대학과 베를린 법정대, 세계화와 노동정책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노조 활동 이외에도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조사위원, 노동법이론실무학회 정이사,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