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지난달 28일 국무조정실이 규제 개혁의 일환으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허용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범위를 검토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쌍수를 들며 환영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2013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당시 헌재는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등의 사용이 한의사 면허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둘째, 한의대에서 현대의료기기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도 상당히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국민들의 편의성 증진 등의 이유다.

그러나 당시 헌재의 판결문을 보면 ‘자동화되어 해석에 전문적 식견이 필요 없고, 환자에게 큰 위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의료장비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논리에 충실하자면 초음파나 X-ray 및 혈액검사결과 등은 아예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이의 해석에는 ‘전문적 식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한의대에서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이 아닌 현대의학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의과대학의 교과 과정만큼 비중 있게 배울 리 없다. 게다가 법률적으론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만 취득하면 모든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턴과 전공의 등 최소 4~5년의 수련기간이 더 필요하다.

국민 편의성 증진의 이유도 정책의 타당성을 담보해주진 않는다. 정부가 전통의료인 한의학을 공식적인 의료체계에 편입한 탓에, 많은 환자들이 병원 응급실로 가야할지 아니면 한의원으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현장의 의사들은 상당수의 환자들이 그런 식으로 ‘골든타임’을 놓친 다음 응급실에 온다고 한탄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가 나서서 한의학 연구기관을 만들고 예산도 투입해왔다. 또 연구목적으로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해줬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결과는 보고되지 않았다. ‘결과’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의학 과학화를 위해 설립된 한국한의학연구원조차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한의사들에게 현대의료기기를 허용해준다면, 정부가 국민의 건강 증진보다 한의사들의 생계만 신경 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일부라도 현대의료기기의 사용을 허용하고 나면, ‘미끄러운 경사로’ 효과가 나타나서 곧바로 추가적인 허용 요구가 등장할 것이고, 결국 면허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공산이 크다. 기요틴으로 처단해야 할 규제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정당한 규제는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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