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형기의 좌충우돌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려는 정부의 규제 개선안을 놓고 정초부터 의료계가 반대 열기로 후끈 달아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한다면 지난 60여년 동안 유지해 온 양·한방 의료이원화가 잘못된 정책이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게 된다.


사실 의학이면 의학이지, 어찌 의학을 양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비록 일제강점기이기는 했어도 경험의학에 불과했던 전통 한방의료를 수행하는 직군을 의사가 아닌, 의생(醫生) 신분으로 격하해 규정한 것은 옳았다.

이 틀을 깬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전쟁 중 혼란을 틈 타, 1951년 피난 국회에서 소위 ‘한의사법’이 통과됐다. 당연히 하나여야 할 의료가 양방과 한방으로 이원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모든 문제가 양·한방 억지 이원화로부터 배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결국 의생은 한의사로 둔갑했고, 한(漢)의학은 한(韓)의학으로 이름마저 바꿔가며 민족의학의 계승자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대체 또는 보완의학으로 상위 범주의 포괄적 의학에 편입돼야 하는 한방이 마치 의학과 동격인 양 대우를 받은 것도 왜곡된 양·한방 이원화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원래 하나인 것을 구(舊) 의생의 정치 공세에 밀려 억지로 둘로 나누었으니 문제가 안 생길 리 없다.

예를 들어 의료법 27조 1항은 의료인이라도 면허된 것 이외에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지만, 이 경계를 넘으려는 한의사들의 시도는 빈번하고 집요했다.

주요 쟁점은 현대의학의 원리를 이용해 개발된 의료기기의 사용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하지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단 또는 치료를 하려는 한의사들의 시도는 대부분 면허 범위를 넘어 선 것으로 판단돼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현행 실정법 하에서 ‘면허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학문적 원리의 일관성 유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불허한 것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현대 의료기기의 개발 및 사용에 관련된 의학 원리가 전통을 고집하는 한방의료의 학문적 원리와는 전혀 별개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도 피부 질환 치료를 위해 한의사가 광선 조사 시술을 한 것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역시 한방의료의 학문적 원리인 경락 울체 해소와 광선에 의한 조직 파괴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실 현대의료기기와 한방의 전통 원리 사이에 접점이 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불허한 위 판결들은 사실상 양·한방 이원화를 유지해 주는 일종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양·한방 이원화의 벽을 넘보며 끊임없이 월경을 시도하는 한의사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사용해 왔던 것이라 괜찮다’라며 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 없이 전통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안존하는 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방 역시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 엄밀한 근거를 창출하고 관련 학계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순간, 한방은 존립의 근거가 된 ‘전통’ 또는 ‘오래 사용해 문제가 없음’이라는 학문적 원리를 스스로 내쳐야 하는 자기 모순에 빠진다. 요컨대 한의학이 의학과는 별개라는 양-한방 이원화 논리에 기대 한의사 존립의 타당성을 주장해 왔는데, 이제 그 논리가 스스로의 발목을 옥죄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 달라는 한의사들의 주장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를 허용하는 순간 의료 일원화 논란이 점화될 것이다. 하긴 진작에 해결돼야 했는데 오히려 잘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의사와 한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의사와 의학만이 남는 의료 일원화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한의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와중에 수면 밑으로 가라 앉게 될 한의사들이 모두 정부의 책임이 될 것은 분명할 터. 헐… 그래도 좋다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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