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두 교수의 Palliative Care


[청년의사 신문 장영두]

우리의 문화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는 철저히 금기시돼 있다. 의사국가고시 준비 시에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을 따로 배울 정도다. Palliative Medicine은 공교롭게도 이런 마약을 주로 취급하는 대표적인 의료분야이다. 암환자의 2/3 이상은 암과 관련된 통증에 시달리고, 강한 Opioid를 처방받아야 겨우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암과 관련된 아주 심한 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해 강한 신경자극제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심한 악액질과 오심, 구토에 대마와 유사한 알약(Dronabinol)을 시판 허용하고 있다.

또한 암과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덜기 위해 다양한 항우울증제, 진정제 등이 사용된다. 그뿐인가. 아주 극심한, 조절되지 않는 통증과 호흡곤란 등이 있을 때 Palliative Sedation이라는 초강수요법도 동원되곤 한다. 이렇듯 Palliative Medicine 의사는 우리 사회가 철저히 금기시하는 마약 종류를 많이 취급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앞서 언급한 아주 꺼림칙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이 의사와 의료기관에게 약처방에 관해 신중을 넘어서 과하게 억압적으로 작용하고, 이로 인해 환자의 적절한 통증 관리에 관한 권리가 침해 받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청년의사에 실린 강명신 교수님의 ‘몰핀 접근권이 중요한 인권의 한 요소’라는 칼럼을 감명 깊게 읽었다. 현장에서 환자와 함께하는 의사로서 강한 공감을 느꼈다.

환자들이 처음 Palliative Medicine 진료를 받게 되면 상당수가 매우 우울해지거나 불안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종양내과 의사를 처음 만나는 것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때로는 화를 내거나 진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러 단계의 편견과 장벽을 이겨내야 한다.

첫째, Palliative Medicine은 편히 죽게 만드는 학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은 생을 좀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둘째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증상 조절에 필요한 약품이 주로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는 종류가 많다보니 이런 약제 사용과 관련하여 사회적, 의학적 편견을 교육시키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환자와 가족뿐만이 아니라 의료진 교육 또한 크나큰 고민거리다. 필자의 많은 환자들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응급실로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것이 과도한 마약성 진통제 투여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보호자나 환자가 응급실 의료진의 설명에 의존해서 통증 관리에 불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아주 고용량의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고 있던 환자가 어떤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게 되는 경우, 가끔 해당병원 의사의 진통제에 대한 편견 내지는 개인적 거부감 때문에 부적절하게 진통제를 투여 받아 금단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론 이런 의사의 부적절한 통증 관리에 대한 책임보다 오히려 환자에게 억울하게도 마약중독자라는 오명의 굴레를 씌어 극심한 암성 통증에 고통 받는 환자의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훼손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가끔 아는 분들이 나에게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 분들이 있다. 그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이런 두 가지 편견과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면서 일할 수 있을지, 또한 제도적으로 내가 지금 주로 사용하고 있는 약제들이 적법한 환경으로 흡수될 수 있을까이다. 진통제 처방과 관련한 편견의 극복과 제도적, 행정적, 법률적 뒷받침 없이 암과 관련된 제대로 된 통증 관리를 의사의 책임으로만 미루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다. 역으로 이런 시스템을 만들도록 모두가 노력한다면 우리에게도 고통 없는 행복한 노후와 중증질환 관리의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