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현 대표 간사랑동우회


[청년의사 신문 윤구현]

올 한해 의료계를 흔들었던 화두 가운데 갑상선암 과잉진단 논란이 있었다. 그간 비교적 작은 논쟁거리였으나 3월 8명의 의사가 ‘갑상선암 과다 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 연대’를 만들고 우리나라의 갑상선암 환자가 “세계 평균의 10배이상이지만 실제 갑상선암으로 숨진 환자의 수는 30년 전과 비교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며 갑상선암 과인진단 문제를 지적함에 따라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관련 학회에서는 “질병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 치료하는 것은 의사의 사명”이라며 증상이 없는 사람의 검진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 결과 8월에는 정부 주도로 ‘갑상선암검진 권고안’이 만들어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갑상선암의 과잉진단이 의사들의 경제적인 욕심 때문이라고 했지만 매년 갑상선암으로 사망하는 약 200명 정도의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들로서는 보다 일찍 발견했으면 사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언론에 의사들이 기고하는 글들에서 의사가 말하는 좋은 의사의 조건에 대부분 ‘친절한 의사’를 언급하고 있다. 의사의 친절함은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높이고 환자들은 아픈 사람의 병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해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너나 없이 친절함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 진료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지난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에서 조차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은 4.2분에 불과하고 환자들이 원하는 진료시간인 6.3분에 모자라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평균 진료시간이 4분이라는 것은 초진, 중증환자가 아닌 환자는 1~2분 만에도 진료가 끝난다는 뜻이다. 이런 시간에는 친절함은커녕 의사와 환자가 눈 한 번 마주치기도 어렵다. 의원급의 사정이 보다 낫기는 하지만 10월 개원의들이 중심이 된 서울시의사회는 하루 75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을 때 수가를 깎는 차등수가제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이 더 줄어도 된다는 뜻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가장 작지만 국민들이 의사를 만나는 횟수는 OECD 평균의 두 배 이상으로 가장 많다. 다른 나라에 비해 진료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결과이다.

2013년 서울대병원이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들이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의존하는 정보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TV, 신문 등 대중매체의 정보’와 ‘의사’가 정확히 같은 비율의 답을 얻었다. 올해 간사랑동우회에서 한 설문에서도 의사와 인터넷은 큰 차이가 없었다. 전통적인 정보원보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환자뿐이 아니다. 2008년 대한의사협회의 조사에서 의사들은 의료제도, 의료기술, 의약품 정보를 학회나 학술지보다 전문지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얻는다고 답했다. 더 이상 의사는 국민들에게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아니며 신문, 방송, 인터넷, 그리고 ‘환자의 지인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주류의학을 대표하는 의사의 출연보다 대체요법, 의학평론가라는 사람들이 더 인기를 끌며 유산균으로 불임이 치료됐다고 말하는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가장 인기 있는 닥터테이너로 꼽히고 있다. 환자에게 의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자가 겪는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의사와 의학을 따르고 TV나 신문의 올바르지 못한 의학 정보 보다 주치의의 말을 더 신뢰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다 긴 진료시간,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이루어진 복약순응도에 대한 한 연구를 보면 환자는 의사의 말을 잘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차진료 의사와 노인환자를 함께 조사한 이 연구에서 22%는 복용하는 의약품을 다르게 알고 있었고, 의약품 용량은 71%, 복용법은 66%가 불일치 했다. 우리보다 훨씬 친절하고 충분한 진료 시간을 쓰는 미국에서조차 의사가 생각하는 환자는 실제 환자와 차이가 컸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얼마나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는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환자의 선택권이라는 명분으로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 만성질환자를 추적하지 않으며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갔는지, 치료를 임의로 중단했는지, 대체요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국가결핵관리사업 정도이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것은 갑상선암 환자뿐이 아니다. 1,000만명이 넘는 만성질환자들은 TV와 신문, 인터넷에서 올바르지 못한 정보을 얻고 있으며 자율과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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