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매년 전공의 모집 전형 결과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젊은 의사나 의학도들이 왜 이리 미래를 길게 보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다. 너무나 시류에 예민하다고 할까. 올해도 어김없다. 외과 지원자가 적다는 것은 으레 그랬다 치고, 내과마저 미달이 됐다. 의술의 근본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기실 지원율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성실하고 우수하고 진취적인 젊은 의사들이 미래 의술의 발전이나 국민 건강 증진 분야로 나아 가느냐이다.

내과 지원 감소에는 원격의료 도입 논의, 선택 진료비 축소 과정에서의 내과 질환 중증도 저평가, 초음파 보험 급여 확대로 인한 수익 감소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전공의 지원 트렌드가 의료 환경을 즉각적으로 반영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인구 구조는 고령화되고, 갈수록 만성질환이 늘고, 내과에서 이뤄지는 최소 침습 시술의 범위가 넓어지고, 내과 전문의로서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그렇게 많은데 말이다. 원격의료가 걱정이라면, 미래 의학의 메가 트렌드인 IT 헬스케어를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는 없단 말인가. 외과에 지원하려 하다가 엄마가 반대해서 포기하는 ‘마마 인턴’도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정부가 의료제도를 좌지우지하는 ‘행정 의료’를 펼친다 하더라도, 국민 대다수에 영향을 줄 의료 환경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방치하지 않는다. 외과나 흉부외과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료수가를 올려서라도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나간다. 어느 나라나 사회 여론이 근본 필수 의료가 열악한 환경에 놓이는 것을 놔두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 의료 수요가 감소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지금 지원자가 없는 곳이 가장 유망한 곳이다. 눈앞의 변화에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젊은 의사들의 가벼움과 진취적 의지 결여가 아쉽다. 아울러 선배 의사들의 푸념이 젊은 의사들에게 그대로 이입된 것은 아닌지, 의료 환경 개선 활동에 미흡한 건 아닌지 자성하게 된다.

성형외과·피부과 등 미용 의료 클리닉이 밀집한 서울 강남 일대를 지나다 보면 서울대 마크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만큼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가 많이 개업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대 마크에 박힌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이라는 라틴어 글귀는 강남 미용 성형 분야에서도 빛을 내고 있다.

도쿄 시내 어디를 가도 도쿄대 마크를 큼지막하게 걸어 놓은 미용 클리닉을 본 적이 없다. 뉴욕 중심가 뷰티 타운에도 하버드대 간판을 단 클리닉은 눈에 띄지 않는다. 유독 우리나라는 서울대 마크가 미용 의료 시장에서 성공을 도모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서울대는 국내 최고 국립대학이다. 학생 등록금은 사립대보다 싸고, 교수 월급과 병원 설립에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일정 부분 공적 자금이 쓰여 의사와 전문의가 양성된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강남에서 잘나가는 성형외과·피부과 원장을 키우기 위해 내 세금이 쓰인 꼴이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명문대 간판이 의원 앞에 붙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의원이 마치 대입 사설 학원 같다. 한국 의학과 의술이 이렇게 유치하단 말인가.

젊은 의사들은 머리 좋게 태어나고 6~8년 고가의 등록금을 내고 의과대학을 다닐 정도의 경제적 지원 환경에서 의사가 됐다. 그 결과로 월급 좀 더 받고 수입 늘리려고 그렇게 공부하고 힘들게 수련했는가. 젊은 의사들이여, 무엇을 위해 의사가 됐는가를 다시 생각해보자. 미래 의료의 주역이 되겠다는 포부는 의과대학 지원할 때 쓴 자기 소개서로 끝난 것인가. “의사는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숭고한 사명의식을 갖고 진료와 의학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이 말은 한국 의료계가 외국에 나가 자랑을 삼는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말씀이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