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비정상 진료실


[청년의사 신문 김선영]

암환자들, 아니 정확히 말해 암생존자들은 늘 재발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 암수술은 대개 상당부분의 정상조직까지 손상되는 큰 수술이고, 일부 고위험군의 경우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치료까지 보통 6~8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 고난의 여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그 보상으로 완치라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암이라는 질병은 그런 인내와 정성을 배반하기 일쑤이다. 재발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하고 소위 ‘투사(projection)’라고 부르는, 자신의 불행을 누군가의 탓을 돌리는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하지만 의사가 된다.

“지난번까진 괜찮다가 왜 갑자기 재발이래요? 지난 검사에서 뭔가 놓친 거 아닌가요? ”

“좀더 검사를 자주 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검사를 제대로 안 해서 재발을 놓쳤다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임상 의사는 더 자주 검사를 하도록 처방을 낼 수밖에 없게 된다. 영상의학과 의사는 검사에서 나오는 수많은 애매한 소견도 나중에 놓쳤다는 말을 들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모두 일일이 나열하게 되고, 이에 대한 추적검사를 권유하게 된다. 암환자는 산정특례가 적용되어 본인부담금이 5%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검사를 자주 하는 것이 환자나 의사나 별 부담이 없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더 많은 암생존자가 더 자주 검사를 하게 되고, 검사를 할 때마다 공포와 예기불안에 떨어야 하며, 더 많은 방사선에 노출될뿐더러 결과적으로 의료비가 상승한다.

그렇다면 암생존자에 대한 적절한 추적관찰간격과 검사 종류에 관한 권고사항은 어떻게 될까? 물론 정답은 없을 것이다. 암종 종류별로 다를 것이고 각 국가에서의 해당 질병의 유병률, 사망률과 의료제도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내가 주로 보는 대장암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유럽과 미국의 진료가이드라인에서는 고위험군 환자에서 전산화단층촬영 (CT)을 6~12개월 간격으로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추적관찰 목적의 양전자단층촬영(PET)은 권고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현실적으로는 CT를 12개월에 한번씩만 찍자고 하는 과감한 의사는 아마 거의 없을 것 같다. 대개는 6개월 간격으로 CT를 찍는 것이 일반적이고, 고위험군은 3개월 간격 촬영도 드물지 않다. 최근의 PET 급여기준 강화 이전에는 CT 대신 PET으로 추적관찰을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어디까지가 적정진료이고 어디부터 과잉진료인지 그 경계는 불투명하지만, 외국에 비하여 우리나라에서 더 자주 고가의 검사를 하는 경향인 것은 분명하다.

재발을 일찍 발견하면 치료를 조기에 해서 좋을 것 같지만, 정기적 검진으로 인한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최근 영국에서 이루어진 임상연구에 의하면, 정기검진 없이 증상 발생시에만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경우에 비해 정기적 검진을 받은 경우 수술이 가능한 재발의 진단이 증가한 정도는 4~5%였다. 생존율의 차이는 약 2%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검진 방법은 종양표지자만 검사하는 경우, CT만 찍는 경우, 둘 다 하는 경우의 3가지였는데 이들 간에 수술 가능한 재발 검출과 생존율의 차이는 없었다. 소요되는 진료비, 검사비, 교통비를 합친 제반비용과 방사선 노출, 검사 후 예기 불안으로 인한 정신적 소모에 비해 재발여부에 대한 정기검진이 갖는 효과는 다소 허무할 정도다.

물론 정기적 검진으로 조기에 재발을 발견하여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가 소수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재발여부에 대한 검진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더 자주 검사를 하고 더 고가의 검사를 한다고 해서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음 역시 분명해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검사 위주의 검진 관행에 문제는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환자에게는 손도 안대고 검사결과 이상 없습니다, 하고 1~2분만에 끝나는 검진이 아니라, 진료가이드라인에 있는 대로 병력청취와 신체검진과 함께 치료의 장기합병증에 대해서도 상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재발로 인한 좌절, 투사, 의료현장에서의 불신도 조금 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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