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디자인 개선으로 응급실 폭력 줄인 이성용 디자이너


[청년의사 신문 김선홍]

서비스 디자인 개선만으로 응급실 폭력을 획기적으로 줄인 해외 사례가 소개돼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 산업디자인회사 피어슨 로이드 스튜디오의 이성용 수석디자이너는 지난 27일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타벌에서 ‘영국에서의 헬스케어 서비스·제품 디자인’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빈번한 응급실 폭력을 획기적으로 줄인 사용자 경험 개선 서비스 디자인 사례를 소개했다.

이 디자이너에 따르면 로이슨 피어드 스튜디오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NHS)로부터 응급실 내 폭력을 줄이기 위한 서비스 디자인 개선 작업을 의뢰받았다.

NHS가 한 리서치 그룹에 의뢰해 2년 동안 응급실 내 폭력 사태를 조사한 결과, 매년 응급실 직원 5만5,000명 이상이 위협, 조롱,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는 전체 응급실 근무인원의 10%에 가까운 수치다.

또한 응급실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호 인력 충원 등 매년 1,200억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NHS는 응급실 내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심각한 수준의 ‘심리적 위협’에 시달리지만 이에 비해 응급실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마냥 기다려야 하는 데 불만을 품고 폭력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슨 피어드 스튜디오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응급실 내 폭력을 유발한 환자군을 주취자 등 외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람들과 그 외 평범한 사람들 등 2개 군으로 나눴더니 의외로, 평범한 환자군에서 더 많은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로이슨 피어드 스튜디오는 ▲상황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고 ▲최소한의 침착성을 보일 수 있는 평범한 환자들에 맞춰 서비스 디자인 개선 작업을 시작했다.

응급실 프로세스 4개로 나눠 진료 과정 설명

그들은 응급실 내의 각 프로세스를 ▲접수 ▲평가 ▲치료 ▲결과 등 4개로 나눠 환자들이 자신이 현재 응급실 내 각 프로세스 중 어디에 속해 있는지, 응급실 내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등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툴을 고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가 입원 즉시 받는 핵심정보 안내서와 벽 부착용 프로세스맵, 리플렛, 실시간 정보 시스템 등을 마련했다.

단순하고 명확한 아이콘으로 각 과정을 표현했고, 눈에 잘 띄도록 병원에서 잘 쓰이지 않는 색상들을 과감히 사용했으며, 글자 크기를 키워 가독성을 높였다.

또 환자들이 진료를 받으면서 인내심을 잃지 않도록 진료 과정마다 얼마나,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도 고안했다.

벽 부착용 프로세스맵은 각 진료과와 복도를 따라 설치됐으며, 응급실 내 상황을 나타내는 실시간 정보화면은 응급실 대기실에 마련됐다.

이 ‘작은 변화’는 큰 효과를 불러왔다.

시범 적용한 런던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비물리적 폭력 발생 빈도가 이전 대비 50%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다.

폭력 제압에 소요되는 비용도 이전 대비 30%로 크게 줄어들었다.

또, 응급실 이용 환자 중 ▲88%의 환자들은 응급실 프로세스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답했으며 ▲75%의 환자가 심적인 스트레스를 덜 받았으며 만족했다고 답했다.

이같은 응급실 서비스 디자인 개선은 영국 전역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사례를 소개한 이 수석디자이너는 “이는 서비스 디자인 개선이 적은 비용으로도 병원에 어떠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예”라며 “아직은 그 효과에 대해 적은 기준들과 완벽히 수치화할 수 있는 데이터로 나온 분석들만 있지만, 앞으로 그 이상의 무형적 효과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시도들은 결국 환자와 직원들의 웰빙 수치를 동시에 높인다”며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만드는 것은 곧 여러 가지 병원의 비용을 절감시키고, 다시 환자들을 위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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