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의 NYT읽기


[청년의사 신문 강명신]

통증치료에 대한 접근권이 인권이라고 천명한 세계보건기구가 추산하기로 150여개 국가에서, 인구로 따지면 세계 인구의 80%가 통증치료에 대한 접근이 충분치 않다. 약 600만의 말기 암환자와 약 100만의 말기 에이즈환자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

현재 세계 몰핀 사용량의 90%가 북미와 유럽에서 소비되고 있으니 그 외 지역의 사용량은 거의 없는 실정인 것이다. 가장 소비가 저조한 지역이 사하라 남부지역이다. 그러나 꼭 이렇게 몰핀 접근도나 사용량을 부의 불평등으로만 연결 지을 일은 아니다. 몰핀은 생산이 쉽고 단가도 적게 드는 약인데 문제는 용량 대비 이윤이 낮아서 제약회사로서는 개발도상국의 저소득 시장에 진입할 유인이 적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에는 이전부터 통증에 대비할 아무런 대책도 없었는가. 그건 또 아니다. 화학적 마취제들이 나오기 전에도 진통에 쓰인 전통적 생약들이 지역마다 있었다(셔윈 눌랜드의 <닥터스> 참고).

국제적인 마약과의 전쟁 역사는 소위 UN의 1961년 ‘싱글 컨벤션’(Single Convention on Narcotic Drugs)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헤이그 협정이나 제네바 협정 등 이전의 국제협정에서도 마취제의 의학적 사용이 통증과 고통의 완화에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취제의 제조 유통을 제한하여 오남용을 막고자 하는 국제적 단일 규제조치로 이 컨벤션이 나왔고 이것의 지나친 규제일변도가 각국에 문제가 되어 있다.

컨벤션 5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는 이 조약이 전세계적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자국 내 제한조치를 가져왔고 그 폐해가 크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마약에 대한 미국사회의 주류 입장이 국제화에 성공한 일례가 이 컨벤션이라고 미국 대표가 시인할 정도였다. 특히 비판의 목소리 중에는 양귀비나 아편의 재배와 사용이 사회문화종교적 전통으로 이어져오던 개발도상국에서의 ‘비-의학적이지만 과학적인’ 사용마저 제한하고, 선진국의 현대 의과학에서 인정되지 않는 약제의 사용을 금지하여 자국의 형법에 따라 처벌받게 하는 데 권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금 미국의 몇 개 주에서 아편의 재배를 합법화하는 추세에 견주면 아이러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관련 기사를 올린 로날드 피아나(Ronald Piana)에 따르면 그 극명한 예가 인도이다. 인도에서 ‘The Pain Project’를 이끈 완화의학자인 닥터 라자고팔(Dr. M. R. Rajagopal)은 법이 무서워서 의사들이 암성 통증에도 몰핀 처방을 그저 피하고 있었다고 했다. 여러 논란의 결과 인도에서도 최근 몰핀의 의학적 사용에 대한 제한을 풀고 관리도 일원화하고 있다. 값싸고 효과적인 몰핀이 없어서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본다면 누구든지 몰핀 접근권이 인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피아나의 말이다. 이 이슈를 부각시키고 있는 Human Rights Watch를 포함한 일군의 국제인권단체들은 몰핀의 접근권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강력하게 묻고 있는 가운데, 예의 기사를 쓴 피아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같은 기사에서 특별히 우간다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보건부의 자문위원을 지낸 닥터 자그웨(Dr. Jack Jagwe)의 선구적 노력으로 우간다는 지금 암환자 몰핀 처방에 큰 도약을 이뤄내고 있다. 닥터 자그웨는 이미 90년대에 외국 의사들과 국제단체의 도움으로 완화의료에 대한 권리가 우간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라고 의료법에 명시하게 한 인물이다. 이 기조를 밀고 나가서 우간다는 결국 마약에 대한 법률까지 개정했다. 의사가 없어도 간호사가 몰핀을 처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도시 클리닉에서 원거리에 있는 농촌지역 환자들에게 완화의료의 혜택이 고루 미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규제 완화에 힘입어 비정부기구인 Hospice Africa Uganda에서는 몰핀을 직접 생산하게 됐다. 덕분에 이 기구는 국제적인 공급자와 제휴할 기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수요에 따른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몰핀 시장의 효율도 높아졌다. 환자 1인당 진통비용이 1주에 약 1달러 정도라고 한다.

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통증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충분치 못하게 하는 장벽은 공통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그 중에는 통증 관리와 완화의료에 대한 적절한 정책을 입안하지 않는 것, 지나치게 엄격한 약물통제 규제를 개혁하지 않는 것, 그리고 몰핀과 다른 진통제의 구매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미비한 것 등이 포함된다. 인도나 우간다의 규제 완화는 일선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들의 적극적 노력에 힘입어 정부가 움직인 결과다. 종양내과 전문의 허대석 교수는 오래 전부터 OECD 국가간 비교를 통해 의료영상장비의 사용은 확연히 높은 반면 말기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이 저조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완화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형편이 나아지고 있지만 좀 더 관심을 가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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