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찬의 통(通)하는 의료


[청년의사 신문 김용찬]

몇주전이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두개의 재판 결과에 대한 기사가 같은 날 나란히 한국 언론에 실렸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이야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였다. 재판 결과에 대한 보도라는 것 말고도 두 기사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재난에 대한 책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먼저 이탈리아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지난 2009년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라는 지역에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때문에 300여명이 사망했고, 그 보다 더 많은 부상자가 생겼고, 수천명이 집을 떠나야했다. 이에 대해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라고 사람들이 물은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바로 같은 날 우리는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 뉴스를 들었다. 선장의 경우 원래 검찰이 적용했던 살인 혐의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유기치사와 선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36년형이 선고되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지진과 세월호 사태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재난이다. 하지만 이 두개의 사건은 우리가 겪는 (혹은 겪게 될)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가’라는 문제가 늘 핵심적인 쟁점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고, 누가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고, 누가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결국 몇몇 개인들에게 재난에 대한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를 들어도 별로 속 시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라던 만큼의 형량이 주어지지 않아서일까?

세월호 사태가 발생한 직후 우리는 한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를 외치며 우리 사회가 함께 공동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목소리들은 사라졌고 오히려 이제는 세월호 사태 때문에 우리 ‘사회’가 피곤해졌다고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세월호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계속 나가기 위해 떨쳐 버려야할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처음에 말은 어떻게 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세월호 사태와 같은 일을 애초부터 공동체 문제로 다루고 싶어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더 정확하게는) 이 사건을 공동체의 문제로 다룰 수 있는 여력이나 능력이 우리 사회 안에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죄송합니다’ 외쳤던 우리는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수잔 손탁이 <타인의 고통>에서 고발하는, 책임지기는 꺼려하면서 남의 불행을 먼발치서 쳐다보는 한낱 구경꾼들이었을 뿐이었을까.

책임의 소재를 개인에게서 찾고자 하는 경향은 재난뿐 아니라 질병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내가 암에 걸린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일까 아니면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책임일까. 아마도 개인과 사회의 책임 모두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암에 걸리는 것에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내가 어디서 살고 있고, 누구와 어울리고 있고, 어떤 환경과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말로 암을 개인과 사회가 공동 책임져야하는 문제로 다루고 있을까.

최근 필자는 다른 연구진과 함께 한국 언론이 암에 대한 보도를 할 때 암 발생의 책임을 누구에게서 찾고 있고, 암에 대한 대처의 주체를 누구로 상정하고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 언론 기사의 대다수는 암의 원인도, 암에 대한 대처 주체도 모두 개인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리는 이유는 개인의 식생활 습관이 잘 못되어서, 흡연, 운동 부족 등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개인이 암 검진을 부지런히 하지 않아서라는 것이고, 그래서 암에 대한 대처도 결국 개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그런 인식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언론이 암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크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이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위험이 일상화된 시대에 성숙한 사회란 무엇일까?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지 않고, 그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 사회의 책임을 꼼꼼히 따지는 사회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고통의 원인들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바꿔야 한다.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재난에 대해서도,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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