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날로 늘어나는 유방암에 희생당하지 않으려면 조기 발견을 위한 검진이 필수다. 이를 위해 많은 여성이 외과보다는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익숙하게 여긴다. 자궁질환도 정기 진찰받아야 하기에 그렇기도 하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산부인과 의사인 프랑크 호프만은 이런 맥락 속에서 유방암 검진을 해왔다. 그는 유방 촬영술을 하기 전에 촉진을 통해 유방암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를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방을 세세히 만져서 조그만 암 덩어리를 찾아내려 했으나, 진료 일정상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한 사람당 3분 정도였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촉각이 뛰어난 시각장애인 여성에게 유방암 촉진 검사를 맡기면 어떨까? 프랑크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시각장애인에게 유방암과 양성 종양 또는 일반 멍울과 다른 점을 교육하고, 유방을 촉진하는 요령을 가르쳤다. 그러자 섬세하고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일반 여성은 유방암 의심 덩어리를 1~2cm 크기만을 잡아냈는데, 시각장애인은 6~8mm 덩어리도 촉진으로 찾아냈다.

이에 그는 ‘발견하는 손’(Discovering Hands)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프랑크는 독일 전역의 시각장애인 여성을 규합하여 유방암 촉진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켰다. 점자 좌표를 이용하여 어떤 순서로 유방을 만져야 하는지 매핑(Mapping) 시스템도 개발했다. 유방암 조기 발견 촉진 검사를 받기 원하는 여성에게 이들 시각장애인을 연결했다. 촉감이 뛰어난 시각장애인 ‘검진관’은 최대 30분 가까이 투자해서 딱딱하고 잘 움직이지 않고 다소 거친 질감의 유방암 알갱이를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고, 검진 여성은 좀 더 효율적으로 유방암을 조기 발견하게 되는 이득을 봤다. 프랑스, 덴마크, 영국,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이 공로로 프랑크는 독일계 제약회사 베링거잉겔하임이 사회공헌 목적으로 진행하는 ‘아쇼카 펠로우’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의료 현장에서 새로운 발상으로 환자 또는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나 활동을 펼친 혁신가에 주어지는 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베링거잉겔하임과 사회적 혁신가 국제네트워크인 아쇼카가 진행한 헬스케어 솔루션 발굴 프로젝트를 보면, 참신한 것들이 많다. 전 세계 곳곳에서 뭔가 새로운 시스템이나 서비스 기법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노르웨이에서는 교육받은 자원봉사자들이 치매 환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어 환자의 요양시설 입소율을 떨어뜨렸다. 독일에서는 어른들로부터 학대받은 어린이들이 외상 치료가 끝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 병원 옆에 학대받은 어린이 쉼터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미국에서는 노인들이 쇼핑 나갈 때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노인들 차 태워주기 프로그램을 발족시켜 노인 교통사고를 줄였다. 콜롬비아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상담하는 활동가를 5,000여명 키웠고, 폴란드에서는 한 번도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지 않은 여성 30만명에게 검진과 암 예방 교육을 성사시켰다. 이들 모두 정부 지원 없이 기업이나 사회단체와 연계해 이뤄낸 성과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건강을 공적 의료서비스나 민간 의료기관이 모두 관리하고 해결할 수는 없다. 어딘가에 빈틈이 있고, 허점이 있다. 현재 많은 기업과 사회단체들은 사회 공헌 목적으로 그 공간을 메우고 싶어한다.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과 참신한 발상이 이들과 만나고 합쳐지면, 새로운 의료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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